http://www.artinfo.kr/news/articleView.html?idxno=505
※국보 제11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이건희 삼성 회장 소유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1944년 평양시 평천리에서 공사를 하던 중 출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높이가 17.5cm로 전면에 녹이 많이 슬었고 오랜 기간 침식된 흔적과 불에 탄 자국마저 남아 있지만 드물게 고구려시대 반가사유상인데다 출토지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1964년 3월 30일 국보로 지정됐다.
83호는 일본 국보 1호인 고류사 불상과 곧잘 비교된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야스퍼스가 "이야말로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의 어떤 조각 예술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며 감히 인간이 만들 수 없는 살아 있는 예술미의 극치"라고 극찬했던 불상이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신라에서 제작돼 7세기 초 일본으로 넘어온 고류사 불상은 한국계 혈통인 쇼토쿠(聖德) 태자를 거쳐 신라인이면서 교토 호족이던 진하승(秦河勝)에게 전해졌다. 진하승은 호코사를 창건해 불상을 안치했는데 이는 고류사의 옛 이름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한때 한반도에서 건너간 장인이 조각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나무 재질이 한반도에만 자생하는 적송(춘양목)임이 드러나면서 거짓임이 입증됐다. 재질만 다를 뿐 두 불상은 모양이 흡사하다. 1994년 일본 국보수리소 다카하시 준부가 결국 "두 불상은 같은 공방에서 한 장인에 의해 제작된 것"이라고 발표하면서 83호가 고류사 불상의 원형임을 시인했다.
83호는 무게 112.2㎏에 높이가 93.5㎝다. 고류사 것은 이보다 작다. 얼굴은 상대적으로 83호가 가냘프다. 고류사 불상은 안면에 옻칠을 하기 위해 천을 덧씌웠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83호가 고류사 불상을 능가하는 것은 청동으로 주조했다는 점이다. 신소연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청동 두께가 5㎜에 불과한데도 흠집이 발견되지 않아 신라인의 놀라운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83호와 같은 청동상은 매우 귀하다. 전쟁 때 모조리 녹여 무기로 사용해서다. 야스퍼스가 83호를 접했다면 어떤 평가를 내렸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83호는 단순함을 강조한 둥근 조형감이 돋보인다. 머리에 얹은 보관도 아무런 장식 없이 둥근 산 모양으로 제작됐다. 허리 아래쪽은 치마의 일종인 군의(裙依)가 입혀져 있다.
군의 주름은 두 다리를 덮으면서 무릎과 다리의 양감을 강조하고 있다. 뒷머리에는 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를 붙였던 흔적이 있으며 귓불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감마선을 투과한 결과, 불상의 팔과 다리, 몸통 내부에는 주조 과정에서 뼈대로 사용했던 철심이 발견됐다. 왼쪽 다리는 별도로 마련된 연화족좌(蓮花足座) 위에 놓여 있는데 왼쪽 발과 족좌의 앞부분은 후대에 수리된 것으로, 원래는 크기가 좀 더 컸을 것으로 추측된다.
민 부장은 "수리한 부분에서 본체에는 없는 납 성분이 검출됐다"며 "양식을 볼 때 보수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후기일 것"이라고 했다.
// 광륭사 미륵상에 대한 놀라운 정보가 있다는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의 제보를 받았다. 그는 광륭사 미륵상에 대한 깜짝 놀랄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일본잡지 ≪역사공론≫ 1976년 6월호의 <아스카불에 보는 일본과 조선>이라는 글의 원문을 제시했다.
https://www.koya-culture.com/news/article.html?no=91997
“(광륭사 미륵상)의 얼굴 부분에 손대기 전 형(型)을 떠놓은 것이 도쿄예술대학에 보존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현재의 얼굴과 다르며 한국국립박물관 불상(한국 국보 제83호) 얼굴과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조선풍이었던 얼굴을 명치 수리 시에 일본풍의 얼굴 다시 말해 일본인이 좋아하는 얼굴로 고쳐 놓아 버린 것이다.”
“像の頭部を型をとったものが東京の芸大に保存されている。これをみると現在の像の顔と異なっており、韓国国立博物館の像の顔に近い容相を示しているのである。つまり 朝鮮風であった顔を明治の修理のさい、日本風の顔、さらにいえば日本人好みの顔になおしてしまった。<아스카불에 보는 일본과 조선> 116-117쪽
이 글은 일본 미술사학자 나가이 신이치 교수가 일본 국보 제1호 미륵상의 얼굴이 수리되었으며 그것도 수리 전과 수리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고 밝힌 글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문화재가 손상이 되었으면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이 기본 아니던가? 하지만 일본인들은 미륵상을 조선인의 얼굴에서 일본인의 얼굴로 성형수술을 해놓고 대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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