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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스크랩/중국

중국 공청단 태자당 상하이방 - 천하무적


# 데이타팩토리는 자료를 정리하거나 가공하지 않습니다. 그냥 날것의 상태로 모아 둘 뿐입니다 #
# 언젠가는 누군가의 소소한 창작 소재가 되어 빛을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


# 개인적으로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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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청단 태자당 상하이방 (1탄) 내란의 원인

현재 왜 중국이 내란 조짐이 보이는 지 정확한 답변을 원하셔서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어줍지 않게 기술 할께요. 공청단과 태자당 상하이방의 갈등 관계를 알기 위해선 천안문 사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그전에 공청단과 태자당 상하이방이 어떤 조직인지 정체성 부터 머리에 넣어 두고 글을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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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청단은 공산주의 이념을 신봉하는 내륙의 자수 성가형 농노 출신들과, 농노 출신들이 중앙 정치에 입문한 아버지를 둔, 뿌리는 노동자 계급에 바탕을 둔 자녀들 쯤 됩니다. 쉽게 말해서 가난한 농노나, 노동자들이 자수성가해서 정치 세력화 시킨 부류들 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 불평등이나, 브르조아들과는 태생적으로 반대 진영에 있는 사람들로 한국으로 치면, 민노당 정도의 스탠스에 있다고 보면 됩니다.(중국 내 좌파)

태자당은 그 반대 진영으로서 중국 건국의 1등 공신들인 중국 공산 혁명의 1세대들의 자녀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즉, 태어날때 부터 기득권을 가지고 태어난. 그래서 분배보다는 성장에 집착하는 기득권 세력들. 한국으로 치면 한나라당쯤 됩니다.

상하이방은 장쩌민이 국가 주석이 되서 새롭게 급부상 한 정치 파벌로서 장쩌민이가 상하이 출신을 중심으로 정치 세력화 시킨 약간 실용주의적이고 개혁 개방을 진두했던 장쩌민이가 뿌리를 박아 둔 신흥 세력 쯤 됩니다. 고로 신흥 세력이라 공청단과 태자당에 비해 뿌리가 약합니다. 1세대들이 없어요. 북부 한족들에 비해 이념에 대한 충성도가 약한, 남부 한족들, 광저우, 상하이 출신들. 특정 대학 출신 (칭하대=중국을 이끌어 가는 2개 엘리트 대학 북경, 칭하대중 칭하대 인맥(주룽지)=단 후진타오 제외)

결론을 내 보자면 한국으로 치면 현재 중국은 민주노동당이 최대 파벌로 집권당이고 야당에는 한나라당이 있으나 민노당을 상대하긴 벅차고 안철수 정도의 사람이 만든 안철수당과 손을 잡고 민주노동당을 견제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고 안철수 원장이 상하이방과 같은 정치색이란 건 아니구요. 힘의 구도를 설명 하자니 한국엔 적절한 비교 대상이 없네요. 여하튼 안철수당은 직전 안철수가 대통령이였음. 군부에 안철수당 출신들을 대거 심음)

그런데 그게 황금 비율로 견제가 잘 되고 있었어요.

중국의 상왕들인 9명의 상무위원들인(이들 자체가 중국의 권력 판도 입니다) 

우방궈, 원자바오, 자칭린, 리창춘, 시진핑, 리커창, 허궈창, 저우융캉.
 
후진타오와 리커창이 공청파, 우방궈와 자칭린이 상하이방, 원자바오와 리창춘이 중립, 그리고 나머지 세 명, 시진핑과 허궈창과 저우융캉은 태자당입니다.

공청단 2명, 상하이방 2명, 중립2명, 태자당 3명으로 이루어진 황금 비율로 권력이 균형 상태였어요.

PS. 한국 입장에선 상하이방+태자당 세력이 집권하는게 좋아요. 동북공정과, 공자 한국인설의 국가차원의 조직적 유포. 이런것들이 전부 공청단 출신의 거칠게 자란 골수 빨갱이들이 주도 하고 있거든요. 장쩌민이 집권했던 상하이방 시절에는 한중관계가 좋았음. 상하이방이나 태자당은 선동과 술수 같은거엔 관심 없음.

2탄에선 왜 이들 대립이 천안문 사태로 거슬러 올라 가야 하는지 기술 할께요. (애네들은 서로 한이 맺혔음). 그리고 보시라이 때문에 왜 내란 수순으로 격화 될수 밖에 없는지. 상무위원 권력 서열 꼴지인 저우융캉이 왜 무서운지도 기술 할게요. (저우융캉이 경찰권을 가지고 있는데 그 경찰 조직은 기계화 기갑 사단까지 가지고 있는 골때린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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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청단 태자당 상하이방 (2탄) 내란의 원인

집중하기가 힘들어서 왜 공청단 VS 상하이방, 태자당 구도가 생겼는지, 그 근원을 기술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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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방과 태자당은 왜 공청파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요? 이러한 파벌대립의 뿌리는 1989년에 발생한 천안문사태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공청파는 원래 당내 기관인 공산주의청년단 출신들 입니다. 공청단엔 공산주의 이념에 투철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안목을 가진 젊은 인재들이 많아서 일찍부터 덩샤오핑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덩샤오핑은 공청단을 예의주시하며 후계자를 키워나갔는데 첫 주자가 바로 그 유명한 후야오방입니다.

후야오방은 덩샤오핑의 총애 속에 승승장구하며 마침내 중국공산당 총서기직에 오릅니다. 그러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그를 바라보는 공산당내 상하이방의 시선은 곱지 않습니다. 후야오방은 권력층의 부정부패를 비판하며 정치개혁에 힘썼는데 이것이 화를 부릅니다. 태국도 탁신이 개혁 정치를 표방하지만 절대 넘어서는 안되는 금기인 집권 세력의 부패 문제를 건들였다가 아작이 나죠. 후진적 정치체계를 가진 나라들의 공통점입니다.

"개혁은 하되 기득권층은 건들지 마라...."

후야오방의 주장이 ‘삼권분립’(후덜덜..) 까지 나가자 상하이방은 난리가 나죠. 후야오방은 중국판 노무현이라고 보심 됩니다.  사학법 국보법 건들이고 기득권층과 각을 세우다가 결국엔 죽음에 까지 이르는 과정이 비슷하거든요. 덩샤오핑도 더 이상 후야오방을 못 지켜 주고요. 후야오방은 공산당 총서기에서 쫒겨나 고초를 겪다가 1989년 5월 심근경색으로 쓸쓸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분노한 학생과 지식인들이 천안문에 모여 그의 복권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것은 핏빛 진압!!

바로 "천안문사태"입니다.

현재 공청파의 지도자들인 후진타오, 리커창, 리위안차오, 류옌둥, 왕양 등은 1980년대 초중반 공산주의청년단 단원을 하며 후야오방의 정치이념을 좇던 청년들입니다. 
 
++리커창++ (리커창을 이해하는게 중국 내분의 본질을 꾀뚫는 중대 요소이니 차후 기술 할께요. 원래 애가 차기 중국 주석이였는데, 태자당과 상하이방이 단 하루만에 세상을 뒤 엎습니다.)

후야오방을 따르던 공청단은 그후 초토화 되어 중요 인사들이 10여 년 동안 한직을 떠돌아야 했습니다. 장쩌민이가 주석이 되고, 그 유명한 인도네시아 화교 학살 사건도 쌩까면서 군권을 틀어 쥔 이유는 차기 주석을 이미 덩샤오핑이 후진타오로 내정해 버렸기 때문에 후환이 두려워서 입니다.

후진타오가 이를 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군권만 쏙 빼고 줍니다. 후진타오가 장쩌민으로부터 당 중앙군사위 주석 직까지 승계한 직후인 2005년 11월, 공청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후야오방 기념대회’를 열고, 후야오방을 복권시킴으로써 공청파의 입지를 다지고, 독자적인 영도체제를 구축해서 중국을 공청단 손아귀에 넘어가게 하려고 합니다. 

반면 천안문의 피를 딛고 집권한 장쩌민과 상하이방은 발끈하고 나섭니다. 후야오방의 복권은 장쩌민과 상하이방이 뒤지게 생긴 일이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불안해진 장쩌민은 공청파를 견제할 정치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합니다. 상하이방은 노쇠한데다 뿌리가 없어 지속적인 견제가 불가능합니다. 장쩌민의 선택은 공산당, 중앙정부, 지방정부, 군 원로의 자녀그룹인 태자당이었습니다. 성장 배경과 경력, 가치관 면에서 공청파와 태자당은 숙적이죠. 민중과 기득권층의 대결이라는 기막힌 대립. 

태자당은 당과 정부의 요직을 빠른 속도로 접수합니다. 태자당의 약진이 가능했던 것은 장쩌민의 후견도 있었지만 4.5세대인 허궈창과 저우융캉이 당 중앙조직부장과 국가 공안부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덕입니다. 당 중앙조직부장은 당 간부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실세 중의 실세고, 국가 공안부장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잡아들일 수 있는 공안 사령탑입니다. 특히 저우융캉이 가지고 있는 경찰 조직은 실제 기갑 사단까지 편제해 놓은 실질적인 군대입니다.

태자당은 태생부터 개혁개방의 과실을 따먹고 자란 기득권층들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후진타오를 괴롭힙니다. 대세가 역전되어 이제 공청단이 리커창을 차기 주석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2012년 후, 숙청 당하게 생겨 버렸습니다. 공청파도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어, 랴오닝, 충칭 등 가난한 내륙지역에 할거하며 친서민 정책, 권위주의 타파에 열중합니다. 분배론을 확산 시키며 흡사 국공합작 때 공산당이 가난한 농노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던 것처럼 세력을 확산 시켜 나갑니다. 리커창, 리위안차오, 류옌둥, 왕양 등 공청파의 5세대들이 그들이며 중일 전쟁 때 공산당이 인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것처가난한 중국 내륙에서 지지세를 넓히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까지가 현재 중국의 세력 판도이구요.

저우융캉의 군대가 요 몇일 전에 무슨 짓을 했는지와 (내전직전 상황까지 몰고감) 시진핑 리커창 같은 애들은 도저히 섞일래야 섞일수 없는 서로 숙청 대상일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편에 쓸께요.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에 이정희가 총리를 하겠다는 형국입니다. 보시라이 사태의 엽기적인 사태 흐름도 쓸께요. 중국 한 복판에서 중국 최고 실세가 보시라이한테 칼 맞을 까봐 미국 대사관으로 도망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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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청단 태자당 상하이방 (3부) 내란의 원인

중국의 처절한 패권 다툼은 지난 편에서 기술했구요. (못 보신 분들은 그냥 춘추전국시대 군웅할거 편이라고 생각하심 되요). 거기에 남방과 북방간의 지역 대립. 내륙과 발전 된 동남 연해 지역간의 대립. 공산주의에 충실한 세력과, 실용주의적 세력간 대립. 노쇠한 상하이방과 젊은 공청단간의 대립. 천안문에 피를 묻힌 세력과 천안문으로 피를 흘린 세력간의 대립.

1.시진핑 vs 리커창

1995년 덩샤오핑은 중국의 미래를 이끌 후계자를 찾아내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이에 당 정치국과 중앙조직부에선 당성, 능력, 평판, 연령 등을 기준으로 전국을 이 잡듯이 뒤진 끝에 두 명을 추천해 올립니다. 그 두 사람이 바로 시진핑과 리커창...(무협지의 서막이죠)

2. 풍운아 시진핑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은 혁명원로로 당근 태자당 소속입니다. 하지만 시중쉰은 여차저차해서 반당분자로 내몰리게 됩니다. 그후 문화혁명까지 벌어져 시중쉰 집안은 농촌으로 유배를 떠납니다. (태자당에선 보기 드문 고난의 가문) 하지만 운명은 시진핑을 버리지 않았나 봅니다. 문화혁명이 끝이 나고 시중쉰은 복권되어 시진핑은 그 후 부터 승승장구 하게 됩니다. 

특히 특이할 만한 일은 32세의 어린 나이에 푸젠성 샤먼시 부시장으로 발탁된 일입니다. 32세 젊은이가 타이완 금문도를 바라보는 경제와 안보의 거점도시에 자리를 잡은 것이죠. 기회를 제대로 잡은 시진핑은 그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인민일보에 대서특필 되며 일약 전국구 정치인으로 도약합니다. (운빨은 타고 났죠)

하지만 시진핑 인생에 최초의 불운이 다가 오는데 시진핑이 있던 푸젠성에 중국 역사상 최대의 밀수사건이 터지게 됩니다. 이에 공청파는 들고 일어 나고 시진핑은 도망치듯 저장성으로 쫒겨 갑니다.  하지만 영웅은 위기를 스스로 기회로 만들죠.

그가 당서기로 있던 저장성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 최고의 경제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공청파의 끈질긴 견제에도 그는 상하이방과 손을 잡는 유연함을 보이면서 공청단이 밀어 주던 류옌둥을 밀어내고 중국의 심장. 상하이시 서기에 오르게 됩니다. 단번에 태자당의 선두주자로 부상하며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는 저력을 보입니다.

3. 파란만장 리커창

태자당에 시진핑이 있다면, 공청파엔 리커창이 있습니다. 리커창의 고향은 안후이성 펑양현 입니다. 아버지가 현장을 지내긴 했지만 어린 시절 먹을 것이 없어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닐 정도로 가난과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시진핑과는 성장배경부터 달랐던 가장 공청단스러운 인물이죠.

1977년 대학입시 제도가 부활하자 리커창은 북경대학 법률학과에 지원합니다. (시진핑은 아버지 빽으로 칭화대 갔음) 이때 리커창의 정체성을 규정 짓는 중대한 사건이 생기니 이름하여 "천안문 사태" 리커창의 대학시절부터 절친이었던 왕쥔타오가 천안문 사태로 중국을 탈출해야만 했습니다. 하루 아침에 절친을 잃은 리커창으로선 공청단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마음 속에 칼을 갈며 악착같이 성공을 향해 질주합니다. 1993년 공산주의청년단 후보서기로 정계에 입문한 리커창은 38세가 되던 해 공청단 제1서기 자리에 올라 역대 최연소 부장(장관)급 인사가 됩니다. 또한, 현재 중국 국가 주석인 후진타오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됩니다. 후진타오와 리커창은 서로 고향이 같은 동향이에요. (그 넓은 중국에서 같은 고향 사람인 후진타오를 운명처럼 만난 겁니다.) 

후진타오는 1983년부터 1985년까지 3년간 리커창 데리고 일하며 일찌 감치 후계자로 점찍습니다.

리커창은 후진타오의 후견을 발판으로 업적을 쌓기 시작합니다. 시진핑 처럼 압도적인 업적은 아니였지만 나름 준수한 성적을 남기게 됩니다. (이 부분을 쓰자면 넘 길어서 패스)

2004년이 되자 리커창은 동북진흥정책의 거점인 랴오닝성 서기로 자리를 옮기면서 공청단 내 본격적인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합니다.

분배론에 중점을 두고, 공청단의 조직적인 후원 속에서 차기 주석으로 거론 되기 시작합니다. (이변이 없는 한 확정적이였습니다) 하지만 리커창의 승승장구가 오히려 시진핑의 급부상을 불러 옵니다. 후진타오가 리커창을 너무 노골적으로 밀어 줘서 리커창이 표적이 된거에요. 후진타오의 후계자는 리커창이다...를 너무 일찍 적에게 보여 준겁니다. 리커창의 급부상에 위기감을 느낀 상하이방과 태자당은 대안을 모색하기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지방행정 분야에서 리커창보다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으면서 성분까지 좋은 시진핑 카드를 은밀히 준비 한거죠. 

4. 노출된 카드와 숨겨진 카드의 싸움은 뻔하다.

2007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7차 전국대표대회. 원래 이 대회는 후진타오의 영도체제를 공고히 하고 공청파 출신의 차세대 후계자를 예고하는 자리로 여겨졌습니다.

공청파가 당과 정치국을 장악할 때만 해도 "리커창이 차기 주석이다" 라는 예측이 대세였습니다. 그러나 최고 지도자 반열인 정치국 상무위원들을 호명하는 순간. 우방궈, 원자바오, 자칭린, 리창춘, 시진핑, 리커창, 허궈창, 저우융캉.
 
시진핑이 리커창을 제치고 서열 6위로 소개되자 후진타오의 얼굴은 굳어 집니다.

이걸로 다음 10년, 공청단에게는 고난의 시기가 상하이 + 태자당에게는 영광의 시기가 도래한거죠.

위기에 빠진 공청단이 다시 약진 하려면 중국 5세대 지도부가 내수 진작에 실패하고 양극화가 심화 되 체제 불안까지 이어 져야 합니다. 그걸 준비하기 위해 공청단 인재들은 일찌 감치 내륙으로 떠났구요.

내륙이 현재 중국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현재 후진타오가 내륙 발전에 집착하고 있는 이유도 경제적 이유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내륙 지역에 또아리를 틀겠다는 공청파의 전략이 성공할수 있을까요?

현재 중국에선 7분에 한번씩 폭동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개혁 개방 이후 10배 이상 늘어 난 수치입니다. (여기서 폭동이라는 것은 국가 권력인 파출소 이상이 습격 당하는 진짜 폭동입니다) 이코노미스트 통계로는 2010년에 이르자 파출소 이상이 습격 당하는 폭동이 9만건에 달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실제이니 궁금하신 분들은 이코노미스트 가보세요) 배고픈 농민공들은 언제든지 폭도로 변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중국이 8% 성장을 못하면 나라 자체가 유지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배부른 동부 해안 지역은, 배고픈 내륙에 나눠 주기를 거부합니다. 여기에 정치 불안까지 이어 진다면, 중국 분열은 막을 수 없는 것이 되겠죠.

5. 그럼 한국은?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한국 입장에선 상하이방 + 태자당 세력의 득세가 국익에 유리합니다. 특히 태자당의 본거지인 동남 연해지역은 개혁개방 초기부터 한국과 많은 유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시진핑 역시 한국과 인연이 깊습니다. 저장성 서기로 있는 동안 우리 민족의 숙원인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복원 해 주었고, 한참 한중관계가 좋을 때는 한국에도 방문하고 그랬거든요. 물론 북한은 현 공청파가 득세 하는게 유리하고요.

꼭 60년 전. 항일 운동할 때, 대한민국 임시 정부 계열은 동남 연해지역에 김일성의 조선 팔로군 계열은 내륙 지역에 은거 했던 시절의 재판이 되어버렸네요.

중국의 권력 판도가 한중 관계를 넘어서 우리 민족의 앞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알아 두심 유익해요

다음편이 완결이 되겠네요. 보시라이 낙마로 인한 소용돌이와 베이징에 탱크를 밀어 넣은 저우융캉의 의도. 서로가 서로를 무차별 연행했던 살벌한 현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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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청단 태자당 상하이방 (완결) 내란의 원인

안녕하세요!! 마지막 완결 편이 되겠네요.

1. 파룬궁으로 시작된 불편한 중국의 권력 구조!!

파룬궁은 그냥 기체조 하는 동호회인데요, 첨에는 중국정부도 잘한다고 표창도 주고 했어요. 회원수가 급기야 1억이 넘자 장쩌민의 천안문 폭살 DNA가 발동 합니다.

공산당도 8천만인데 저게 몬데 1억이냐 ㅅㅂ.
저 새리들 혹시 나라 뒤 엎는거 아녀?

기체조 하지 말라고 국민들에게 하니까, 국민들은 황당해 해요.

근데, 장쩌민이 머리를 굴려 보니까 오호라~ 파룬궁 잘 이용하면 다음 10년이 편하겠구나. 등소평이랑 또이 또이 해서 할수 없이 후진타오를 주석 시켜야 하겠는데, 주석 시키면 후진타오가 자기들 죽여 버릴까봐. 암것도 아닌 파륜궁을 국가 전복 집단으로 몰아 세워 경찰을 통해 잡아 들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경찰력은 증강 됬구요. "경찰 키워서 후진타오 목줄을 쥐어 야지.." 그러게 마음을 먹어요. 우리로 치자면, 음. 빨갱이들이라고 국보법 적용해서, 경찰 앞장세워 시민 단체들 조지는 거죠. 공안정국 조성해서 경찰력을 막강하게 강화 시켰다 정도

암튼 파룬궁 사건을 빌미로 경찰을 장쩌민 파들로 채우고, 군대에서 군인들까지 차출해서 경찰에 집어 넣고, 경찰 특공대 겁나게 키우고, 기갑부대까지 만들고 암튼 중국 정규군이 300만인데, 경찰이 160만이던가, 180만이던가 이게 몬 경찰 입니까. 군대지 ㅋ

암튼 죄 없는 파룬궁들 장기적출, 물고문, 불고문, 성고문, 고대 왕조에서 썻던 고문술을 총동원해서 조져 버립니다. 

후진타오의 입지가 제한적일수 밖에 없는 이유가 후진타오도 정법위원회 수장이 "후진타오 쟤 빨갱이임!" 하면 기갑부대까지 있는 경찰권 동원해서 국가내란죄로 보내 버릴수 있거든요. (왜 그런지는 따로 알아 보세요..글 길어 지는거 자제 하며 쓸께요)

여튼, 장쩌민이가 아직도 뒈지지 않고 살아 있으니, 후진타오 다음 주석은 또 지 시다바리를 앉힐 려고 합니다. 하지만 후진타오도 보통내기가 아니 라서 장쩌민이 주변에 가지치기를 들어 갑니다. 장쩌민이가 주석으로 앉힐려고 했던 천량위를 후진타오가 감옥으로 보내 버려요. 그리고 자기 라인인 리커창을 세울라고 해요. 상하이방 입장에선 후진타오는 역적놈이죠.

그래서 후진타오와 딜을 합니다.

"야~ 후진타오, 우리 경찰권 쥐고 있는거 알지? 우리 경찰은 군대나 마찬가지 인거 알지"
"리커창 내세워서 내란으로 갈래 아니면 우리도 상하이방 안 내세울 테니까, 너네도 리커창 대신에 태자당 출신 시진핑을 내세울래?" 요로케 합니다.

결국 파룬궁 사태로 경찰권이 비대해 지지만 않았다면, 국가 주석이 바보가 되 있는 희한한 G2, 현재의 중국은 아니겠죠. (중국 현대사를 왜곡 시킨 겁니다. 장쩌민이가)

2. 보시라이를 막아라..저 새리 우리 죽일꺼다.

보시라이가 공청단 엄청 싫어 합니다. 공청단도 보시라이 엄청 싫어 하고요.

후진타오 임기 막판, 벌어진 소득불균형, 지니계수, 양극화 때문에 중앙 정부 무능론까지 나오고 있는 마당에, 보시라이가 지들이 써먹을려고 했던 분배론을 선수 쳐서 충칭시에서 써먹거든요.

그래서 충칭시 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에서 보시라이 신드롬이 불었습니다.

하지만 보시라이 분배론은 정말 중앙 정부 차원에선 해선 안되는 미친짓이였습니다. 기업들 협박해서 퍼준거였거든요. 암튼 성공했습니다.

공청파가 가만히 보고 있자니까, 시진핑이는 처세술에나 능하지 지들 죽일거 같진 않고, 시진핑과 친한 보시라이는 권세를 쥐면 정말 자기들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거에요. (명박이형 입장에서 민주당이 정권교체하면 한명숙이 때문에, 죄다 구속 될거 같은 불안감?)

국민들이 보시라이 엄청 좋아하고 시진핑과 친해서 권력도 쥘거 같고 상하이방에서도 밀고 있고 맘 먹고 공청파 쳐 버리면, 속수 무책으로 당할거 같은.

"그 꼴은 못 본다. 보시라이를 얼마 안 남은 우리 임기 동안 쳐내 버리자"

물론 보시라이도 잘한건 없습니다. 공청파에게 제거 당할 빌미를 줬어요. 헤이우드라는 영국인 사업가가 있었는데, 이 사람 아내가 보시라이 집안에 뇌물 줘서, 친해진 다음 헤이우드 사업을 보시라이 일가가 돕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사업 문제로 서로 틀어 지고 보시라이 쪽에서 빡쳐서 몰래 독살 시켜 버립니다.(표면적으론 알콜과다섭취로 죽었다고 발표함) 하지만 이를 어쩔? 그 독살 시킨 영국인 사업가가 영국에서 조~올~라 유명하고 잘나가는 국제적인 인물이였던 거에요. 별 볼일 없는 애라고 생각해서 독살 시켰는데 이런..

그래서 보시라이 최측근인 왕리쥔이 보시라이 한테 막 모라고 합니다. 그러자 시다바리가 감시 나를 훈계해?  보시라이가 빡칩니다. 경찰차 수백대를 동원해서 죽이려고 합니다. 당황한 왕리쥔은 미국 대사관으로 도망쳤구요. 중국으로선 국제적으로 개망신을 당한 거죠.

공청단 입장에선 하늘이 주신 기회인거죠. 머리를 굴린 끝에 후진타오가 시진핑과 역딜을 합니다.

시진핑에게....니가 국가 주석 되도, 군권은 상하이방이 쥐고 있는 골 때린 상황이 된다. 보시라이는 상하이방에서 밀고 있으니까 쳐내 버리자. 니가 보시라이와 친한 건 알지만, 보시라이 쟤는 니 라이벌이야. 보시라이가 언제 너랑 틀어 져서 니 숨통을 쥘지 모르잔니. 쟤는 너까지 죽일 수 있는 차기 정법위 주석이야. 니 권력에 장애물이 될수 있는 상하이방파들은 다 늙었다. 자기들 땜빵용으로 보시라이를 밀고 있다구. 보시라이 쳐 내고 정법위 주석에 시진핑 니 사람을 심어라.

거기에 시진핑이 동의하고, 후진타오는 원자바오를 시켜 보시라이랑 박터지게 싸우게 한 뒤, 위에 사건을 빌미로 제거해 버립니다.

상하이방+태자당 연합에 태자당이 역으로 상하이방을 버리는 음모 플러스 음모

거기다 군의 주요 요직은 상하이방이 쥐고 있지만, 젊은 신진 세력들은 태자당이 상당수 입니다. 젊은 태자당 장수들 입장에선 늙고 부패하고 자기들의 앞길을 막고 있는 상하이방 늙은이들이 못 마땅  합니다.

그런데 같은 태자당 출신인 시진핑이 상하이방 제거 작전에 나선 다고 하니, 이제 운명의 한판이 벌어 지겠죠.

중국은 한국처럼 대통령 된다고, 모든 권력을 다 쥐게 하지 않습니다. 당서기, 군사위 주석, 국가주석 3개를 해야 진정한 통수권자가 되는데, 후진타오가 얼마나 상하이방 장쩌민에게 한이 맺혔으면, 시진핑에게 "너 저거 3개 다 줄테니까 상하이방 다 죽여 버려" 라고 파격 제안을 했을까요.

3. 후진타오의 복수 다음 타겟은 저우융캉..

후진타오 입장에선 상하이방에게 한이 맺혔지만, 딱 누구 한 사람을 꼽으라면 저우융캉 입니다. 보시라이는 미래에 공청파를 사지로 몰 자였지만, 저우융캉은 과거와 현재까지 공청파를 엿먹인 사람입니다.

후진타오가 야심차게 미국과 평화주의 노선을 확립 하려고 자기들 안방인 베이징에 미 수뇌부들을 불러 들였는데, 바로 그날 상하이방 군부가 스텔스기인 젠 20을 미 수뇌부들 머리 위에 날립니다. 이런 굴욕까지 당했으니, 물러는 나되, 상하이방 뿌리는 뽑고 가겠다. 이런거죠.

저우융캉이 공안부장과 정법위 서기를 맡으면서, 공청파의 목줄을 쥐고 있었고, 중국을 정말 상식이 통하지 않는 잔혹한 나라로 만드는데 일조 했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많은 민주화 인사들이 투옥 되었고, 언론은 ㅄ들이 되었으며, 경찰은 부정부패에 혈안이되서 민중들의 고혈을 짜내는데 앞장 섰습니다.

장쩌민이가 경찰 고유 기능인 민중의 지팡이를 포기하고, 자기들 권력 유지용 도구로 사용하고, 순기능을 해야 할 공안기능이 공청파 권력 감시에만 몰두해서 부패나 부정같은 것은 상대적으로 등한시 했거든요.

승승장구 하던, 저우융캉도 보시라이 낙마 이후, 자신이 숙청 대상 1순위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공청파와 손잡은 시진핑을 제거 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공안기관을 이용해 내란을 일으켰다. 라고 현재까지 상하이방도 쫄아서 같은 발표를 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닐 겁니다.

원자바오를 앞세워 보시라이를 낙마 시키려 하자, 저우융캉이 이에 반발합니다. 보시라이 빵셔틀 왕리쥔이 미국 대사관으로 튄 것은 보시라이 때문이 아니라, 공청파가 꼬득여서 그런 거라고 억지 주장을 하게 됩니다. 거기에 늘 하던 식으로, 공안 조직을 움직여서 경고 차원에서 공청파쪽 인사 몇명을 체포하게 되는데 이번엔 잘못 짚은 거에요. 공청파에서 제대로 준비 한 거죠. 공청파 쪽에서 가용할수 있는 병력이란 병력은 최대한 모아서, 역으로 장쩌민이 쪽 인사들을 체포하기 시작 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체포하는 난장판이 벌어 지다가, 저우융캉이 경찰 조직을 이용해 쿠데타 조짐을 보이자, 후진타오가 베이징 외곽에 준비시켜 뒀던 병력을 베이징으로 진입 시킵니다. 그 후 쌍방 병력들 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저우융캉이 집니다. 그날 베이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 지는 하늘만 알겠죠. 겁 주려다가 지가 된통 당한거죠.

여튼 공청파 시진핑 조합이 대세를 굳혀 가고 있는 형국인데, 공청파 입장에선 최대 적이였던 상하이방 세력을 이번 기회에 겁주는 거엔 성공 했지만, 시진핑이 주석이 된 후, 또 어떤 대립이 있을지 모를 상황이구요.

당장 또 다시 상하이방 군부 파벌이 무슨 짓을 몰래 꾸미는 지도 모르고 신진 태자당 파벌이 누구 편을 들지도 모르고 만약 내전이 일어 난다면, 상하이방쪽과 공청파쪽 군부는 서로 싸울 테고.

중요한건 지금 상하이방이 쫄았다 입니다. 그렇다고 공청파가 태생적으로 반대 세력인 태자당과 손을 잡긴 글렀고요, 상하이방 싫어서. 한마디로 늑대가 싫어서 이리를 끌어 들인 형국이죠.

상하이방 입장에서 가장 생각하기 싫은 시나리오는 파룬궁에 피가 안 묻은 시진핑이, 공청파와 손을 잡고 시진핑 임기 초에 파룬궁 사태를 전면에 내세워 상하이방을 뿌리 째 뽑아 버리는 겁니다. 그 중대 조짐으로 그간 철저히 막혔던 중국 내 파룬궁 관련 검색어가 최근 슬슬 풀리고 있죠.

상하이방의 힘으로 세를 얻은 태자당이 이제 공청파와 서로 휴전하고 늙은 상하이방부터 내친 후, 그 둘이 또 싸우는 구도로 다음 중국의 10년을 예상해 봅니다. (상하이방이 이걸 극복하려면 내전으로 중국을 몰고 가야 합니다.)

파룬궁의 실체를 중국 본토인들이 알아 버린다면 상하이방은 끝나죠. 장기적출. 성기 찢기. 불에 달구기. 생뼈를 뽑아 버리기. 여러분이 중국인이라면 분노하지 않겠어요?

결국 정의롭지 않은 통치는 부메랑이 되서 돌아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