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한국을 방문한 서구인들을 통해 유럽에도 그 존재가 전해졌다.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한 과장이 섞여 있었기에 '나체로 자유롭게 바다를 가르며 사는 여인들'이라는 편견 가득한 시각으로 소개되었는데, 이 때문에 해녀에 대해 이슬람 제국의 하렘에 대해 그랬듯이 에로틱한 환상을 품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한다. 동서양 인어 전설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주장도 찾아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해녀들은 크게 시달렸는데 일본에서 잠수기 어업자들이 와서 해산물을 쓸어가버렸기 때문. 해녀들과 달리 이들은 물에 오랫동안 잠수하여 해산물들을 닥치는 대로 채취해댔다.
// 우여곡절 끝에 유네스코 등재된 한국의 해녀
2013년 12월 문화재청에서는 제주 해녀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시작하였다. 사실 2007년부터 제주도에서 홀로 추진해오던 것이었는데, 일본에서 '아마(일본 해녀)'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자 정부 차원으로 진행이 가속화된 것. 본의 아니게 해녀 문화의 유네스코 등재를 두고 한일전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11월 30일 자로 제주 해녀의 등재가 확정되었다.
SBS 스페셜 '해녀삼춘과 아마짱'에 의하면 오히려 제주도에서 먼저 같이 힘 합쳐서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록시키자고 일본에 먼저 제안했고, 관심 없던 일본에서 제안받고 나서 양심상 자기들도 제주도 수준에 맞게 수준을 높인 다음에 등재를 추진해야겠다 싶어서 해녀에 대해서 연구하고 제주에 와서 배우고 《아마짱》이라는 드라마까지 제작해 홍보하는 등 정성을 들였고 아예 제주도에서 자발적으로 적극적으로 일본 도와준다고 우리나라 해녀들이 일본 해녀들 교육시키고 하는 등 훈훈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제주도 담당자가 바뀌며 일본과의 공동 추진을 무산시키고 한국 단독 추진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다고 한다.
또한 2007년부터 일본과 해녀문화 등재를 공동 추진한 건 맞으나 추진 중 일본 측에서 "해녀의 기원은 일본의 '아마'이고, 한국의 해녀보다 3000년 앞선 문화"라며 한일 간 해녀 분쟁이 벌어져서 심지어는 파리 언론을 통해 해당 주장을 퍼뜨리는 등 해녀문화를 '아마'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통수를 맞은 한국 측은 부랴부랴 해녀 등록 사업을 추진해 우여곡절 끝에 2015년 3월에 문화유산 단독 등재신청에 성공하였고 유네스코는 대한민국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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