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스크랩/일본

일본군의 밀리환초 사건 - 한국인에게 인육 먹인 일본군


# 데이타팩토리는 자료를 정리하거나 가공하지 않습니다. 그냥 날것의 상태로 모아 둘 뿐입니다 #
# 언젠가는 누군가의 소소한 창작 소재가 되어 빛을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


# 개인적으로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

## 계엄탄핵시국!! 보수고 진보고 선동하고 선동당할거라면 그냥 중도로 있어 ##
## 양비론이고 양시론이고 극우, 극좌보단 낫다고 봐. 차라리 시시비비론을 추종해. 멍청하게 선동당하는것보다는 ##


-




(생략) 보고서는 조선인의 집단 저항이 일본군의 식인사건 때문으로 보인다고 결론냈다.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1945년 초 일본인이 숙소로 '고래고기'를 갖다 줘 허기진 조선인들이 이를 먹었는데, 며칠 뒤 근처 무인도에서 살점이 도려져 잔혹하게 살해된 조선인 사체가 발견됐다. 주변에 자꾸 사람이 없어지는 걸 이상하게 여겼던 조선인들은 일본군이 산 사람을 살해해 먹었고 조선인에게도 먹인 것을 눈치챘다.

 

까도까도 나오는 일본의 만행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2171243

 

밀리환초 조선인 학살 사건은?

`밀리환초 조선인 학살사건'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남태평양 마셜제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이 일본군의 잔...

news.kbs.co.kr

 

https://n.news.naver.com/article/022/0003939994?sid=102

 

일본군, 조선인 살해 후 고래고기로 위장했다…‘밀리환초 사건’의 실체 [뉴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당시 마셜제도에서 일본군이 강제동원된 조선인 2명을 살해하고 인육을 ‘고래고기’로 둔갑해 먹었다는 주장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을

n.news.naver.com

밀리환초 사건은 태평양전쟁 말기 남태평양 마셜제도의 밀리환초에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잔혹 행위에 집단으로 저항했다가 학살당한 것을 말한다.
 
다케우치씨는 이날 일본은 1942년 초 부산항에서 조선인 2400명을 해군 군속 신분으로 배에 싣고 출발해 전남에서 동원된 800명은 밀리환초에, 나머지 1600명은 다른 섬에 내려줬다. 조선인 군속은 일본군이 고용한 노무자를 말한다. 밀리환초에 도착한 조선인들은 밀리섬 3개의 비행장 활주로와 탄약고, 격납고, 통신소, 지하호 등 군사시설 구축에 동원됐다. 
 
크고 작은 100여개 섬이 가늘고 둥근 띠 모양을 이루고 있는 밀리환초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의 최전방 요충지였다. 원주민 500여명이 살던 섬에 일본군과 징용 조선인이 몰려오면서 1944년 초 거주 인원은 5300여명을 넘어 포화 상태가 됐다.
 
밀리환초 사건은 미군 공격으로 1944년 6월 이후 식량 보급이 끊겼다. 칠본섬에는 당시 일본인 감시병 11명과 조선인 180명이 거주했다. 결국 이 섬에 갇힌 채 배고픔에 시달리게 된 일본군과 조선인 군속은 채집 등으로 연명을 했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 당시 마셜제도에서 일본군이 강제동원된 조선인 2명을 살해하고 인육을 ‘고래고기’로 둔갑해 먹었다는 주장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을 연구해온 일본인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内康人)씨는 7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밀리환초에 끌려간 조선인 55명이 학살 당한 ‘밀리환초 사건’의 실체를 밝혔다.

 

 

https://www.newdaily.co.kr/svc/article_print.html?no=2010100500059

 

Save Internet 뉴데일리

일제강점기 남태평양 마셜제도에 강제 동원됐던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식인 사건에 저항하며 집단행동에 나섰다가 무차별 학살된 사실이 정부 조사로 처음 확인됐다.   몇년 전 일본군 식인사

www.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