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조상 치우(蚩尤)와 ‘붉은악마’
<김주호의 민족 얼 말 글>치우가 패배했다고? 역사 왜곡한 사마천의 사기
염제신농, 황제헌원, 치우천황 모두 우리 조상...남아공월드컵의 치우 환생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강씨(姜氏)성을 가진 치우가 있었다”, “치우는 구여(九黎)의 임금이다”했고, 상서(尙書)에는 “구여는 치우의 백성이다”고 말했다. 왕동령(王桐齡)은 ‘중국민족사’에서 “묘족(苗族)의 나라이름이 구여요, 그 임금을 치우라 했다”고 전한다. 북애자(北崖子, 조선조 숙종원년, 1675년)는 ‘규원사화(揆園史話)’에서 “치우는 동이겨레의 한 갈레인 풍이(風夷)의 사람이다”고 했다.
그런데 중국에서 삼황오제 가운데 한 인물인 태호복희(太皥伏羲)의 성이 풍씨다. 뒤 이은 소전(少典)의 후손인 염제신농(炎帝神農)은 지금의 협서성 기산현 강수(姜水= 岐水)가에서 자라난 까닭에 성을 ‘강(姜)’씨라 했다. 그가 불의 덕으로 임금이 된 까닭에 염제(炎帝, 불 임금)라고 했다.(綱鑑金丹, 中國古今地名大辭典) 또한 밭 갈고 밭 메는 일 등 처음 농사법을 가르쳐 준 까닭에 그를 신농(神農, 신기한 농사꾼)이라 했다고 전한다.
‘사기’에 “강씨 성을 가진 제후인 치우가 있었다”고 했고 “염제신농의 후손으로 황제헌원(黃帝軒轅)이 일어났다”고 했다.(사기 ‘보사기’ 삼황본기) 염제, 황제 모두 동이족 소전의 자손이다. 산해경(山海經)에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이 모두 숙신나라(동이겨레의 땅)에서 일어났다고 했고, ‘제계사기(帝繫史記)’에선 “황제가 밝겨레(白民)에서 났으니…자신이 동이사람이다” 했다.(黃帝生白民…自屬東夷) 모두가 동이족에 속한다.
근세 중국학자 서욱생(徐旭生)의 ‘중국고대사적전통시대(中國古代史的傳統時代)’나 당나라 장수절(張守節)의 ‘사기정의(史記正義)’ 등 역사 기록들이 치우에 대해 하나 같이 “치우가 묘족을 포함한 동이족의 임금이다”고 밝혔다. 옛적 중원천지는 우리 동이조상들의 무대였던 것이다.
중국의 역사문헌들 치우를 왜곡
‘한단고기(桓檀古記, 삼성기 하편, 신시역대기)’에 “신시에 도읍한 배달나라 제14세 임금이 자오지한웅(慈烏支桓雄)인데 세상에서는 치우천왕이라 하며 청구국(靑邱國)으로 도읍을 옮겨서 재위 109년에 151세까지 사셨다”고 전하고 있다. “그에겐 친형제와 일가형제 81인이 있었고, 짐승의 몸에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된 이마(銅頭鐵額), 모래와 돌을 씹어 삼키고 창과 칼, 큰 쇠뇌(太弩)를 만들었다. 슬기와 용맹이 남달랐으며, 능히 안개를 일으키고, 아홉 군데의 야금 소(九冶)에서 광석을 캐고 철을 주조, 병기를 만드니 천하가 모두 두려워했다.
치우란 우뢰와 비를 크게 일으켜 산하를 바꾼다는 뜻이다. 치우는 여산의 금속을 받아 다섯 군대(五兵)을 만들었다.”(한단고기, 司馬貞의 ‘史記索隱’, 太平御覽, 揆園史話 등) 치우로 대표되는 세력이 금속문명을 소유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헌원으로 대표되는 세력은 그때 까지만 해도 금속문명이 없었다는 말이 된다.
“치우는 천도에 밝았다”(‘管子’ 도행 편), “천문을 보아 중토(中土, 중국)의 왕성한 기운을 알고, 쓸데없이 죄 없는 백성을 죽일 수 없다며 돌아왔다”(‘규원사화’ 태시기). 이러한 기록을 보아서도 치우는 당시의 무기와 도술과 전략으로 헌원과 10년 동안 70여회나 싸워 모두 이겼으면서도 천도를 알고 적을 완전히 궤멸시키지 않는 포용력도 보여 주고 있다.
한데, 한국과 중국의 사서가 탁록(涿鹿)에서의 전쟁 결과를 각각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탁록 전투에서 치우가 헌원에게 잡혀 죽었다”고 했다. 규원사화는 이를 부인한다. “이때 치우의 부장(部將)이 불행하게도 공을 서둘러 세우려 하다가 진(陣) 안에서 죽었는데 사마천이 ‘사기’에 ‘드디어 치우씨를 사로잡았다’고 한 것은 이것을 말한 것이다”고 했다. 부장 한사람이 진중에서 죽었는데 이를 중국 측이 곡해한 것이며 사실은 치우측이 이겼다는 것이다.
한단고기는 “황제헌원을 사로잡아 신하로 삼았다”고 했다. 여러 역사기록이 치우의 천하무적의 용맹과 강대함, 치우의 승리를 기록했는데 사마천의 사기는 거꾸로 치우의 패배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을 한족(漢族)의 조상으로 추앙했으나 치우는 제외됐다. 그런데 요즘와선 치우도 자기네 조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탁록의 황제성이라는 곳에 ‘근본으로 돌아가는 사원’이란 뜻의 ‘귀근원(歸根苑)’이라는 사원을 세웠다. ‘탁록중화삼조문화연구회’란 단체서 세웠다지만 알고 보면 정부차원이다. 안에는 세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란 뜻의 ‘삼조당(三祖堂)’이 있다.
이는 중화삼조(中華三祖) 즉, 염제신농, 황제헌원, 치우천황을 뜻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삼조 모두 우리 동이조상이지 결코 중국 한족(漢族)의 조상이 될 수 없다. 헌원과 맞서 싸운 우리 조상 치우마저 자기네 조상이라니. 남의 조상을 사당에 모신 짓은 환부역조(換父逆祖)가 아닌가.
이는 역사적 측면에서도 억지일 뿐 아니라 정치적 의도가 짙다. 서남공정에서 의도하는 남부 묘족의 영토와 동북공정에서 의도하는 동북부 동이족의 영토를 중국의 역사, 중국의 영토로 편입하기 위한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한편, 도대체 자기 조상마저 남에게 빼앗길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뼛속 깊은 자아성찰이 요구된다.
승리의 함성에 천하무적 치우 환생
남아공 월드컵 대회가 개막됐다. 우리나라 태극전사들의 선전이 기대된다. 벌써부터 승리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선수들 못지않게 ‘대~한민국’을 외치는 ‘붉은악마’들의 응원열기가 뜨겁다. ‘2002 월드컵’ 때부터 세계에 이름을 떨친 붉은악마를 상징하는 깃발에 그려 넣은 백전백승의 치우상이 눈에 띈다. 당시 응원기를 디자인한 장부다씨는 ‘겨레의 군신 치우를 상징해서 그렸다’고 했다.
치우의 상징색은 붉은 색이다. “해주에 염택이 있는데, 그 색이 정말로 붉어… 세상에서는 치우혈(蚩尤血)이라고 한다.”(‘몽계필담’ 권3. 치우학회 제2호) “사람들이 10월이면 제사를 모시는데 붉은 기운이 비단필 처럼 펼쳐졌다. 세상에서는 이를 치우기라고 이름 붙였다,”(‘황람’ 총묘기. 치우학회 제2호) 동지에 붉은 팥죽을 쑤어 대문간에 뿌리듯 붉은색은 악귀나 재액을 쫓는 색으로 믿어왔다.
치우는 지붕의 치미에 올리는 귀면와(鬼面瓦)나 도깨비 같은 수호신적 성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치우부적, 치우투구, 치우깃발, 기우제신 등도 모두 치우로부터 유래되는 민속이다. 서울 용산의 전쟁기념관 입구의 천정에 도철문 모양의 치우천황 형상이 그려져 있다. 치우는 전쟁 신, 군신, 승리의 신으로 표상된다. 유비나 이순신장군도 출전에 앞서 치우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여기서 붉은악마의 ‘악마’는 ‘악바리’, ‘악물다’, ‘악착같다’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쓰는 애칭이라 봄이 좋겠다. 이번에 또다시 온통 붉은색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붉은악마’는 흔히 말하는 ‘악마(惡魔)’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과 악은 물리치되 무고한 백성은 해치지 않았고, 약자를 도와주고 선과 도의와 정의의 편에 섰던 수퍼맨 치우장군, 백전백승 천하무적의 치우장군. 그가 오늘 ‘붉은악마’와 함께 외치는 온 국민의 함성 속에 다시 환생할 것 같다.
[김주호 국립 몽골대학교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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