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스크랩/중국

진시황의 병마용갱과 만리장성


# 데이타팩토리는 자료를 정리하거나 가공하지 않습니다. 그냥 날것의 상태로 모아 둘 뿐입니다 #
# 언젠가는 누군가의 소소한 창작 소재가 되어 빛을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


# 개인적으로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


-




만리장성의 정확한 위치 확인과 병마용갱이 진시황무덤의 일부라고 하지만 동이계열의 것이라는 글을 소개합니다

 

병마용갱의 성격

 

진시황릉에서 남동쪽으로 1.5km 떨어진 지하 4~5m에서 병마용갱이 발굴되었는데 전차전의 전투대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실물크기의 진흙상과 말이 6000개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3개의 갱이 발견되었는데 1호갱은 3열종대 병사토우와 40여승의 목조전차가 있고 2호갱의 병마용은 보조부대이고 3호갱은 경호부대가 있으며 사슴뿔, 짐승뼈등이 출토되었다.

 

병마용갱의 병사

이 병마용갱을 대륙학계에서는 진시황릉 동쪽을 보위하는 동부순위대라고 주장하는데 주변 4방에서 나머지 남서북순위대의 갱은 발굴되지 않고 있다.

 

대륙의 학술지<대자연탐구>에 병마용갱이 초(楚)나라의 것이라는 논문이 있는데 내용을 보면 병마용갱의 위치가 진시황릉의 정동쪽이 아니고 남동쪽으로 초나라는 진나라의 남동쪽에 있으므로 병마용은 진선태후를 고향 초나라로 운구하는 행렬이라고 합니다. 

 

이유는 진시황은 통일을 한 후에 차동궤(車同軌)를 실시하고 청동기를 회수했는데 2호갱에서 청동으로 된 80개의 병마용 전차가 발견되었고 전차의 수레바퀴는 서로 모양과 크기가 다르고 바퀴살이 30개인 전차도 있습니다.

 

*차동궤- 수레바퀴의 거리를 5자로 정함

 

그리고 병마용갱에서 발굴된 전차와 모양이 같은 고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바퀴살이 30개인 전차가 산동지역의 장도에서 발견되어 복원해서 전시되어 있습니다.

 

고조선의 마차(장도)

 

병마용갱의 전차

장도에서 발견된 마차는 산동성 무씨사당의 단군벽화에 등장하는 마차와 동일하고 병마용갱의 전차와도 유사합니다이렇게 볼 때 병마용갱에서 발견된 전차보다 시기적으로 빠르므로 전차의 원형이라 할 수 있고 병마용갱의 주인은 동이족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게다가 진시황은 개상흑(皆尙黑)를 통해 검은색을 사용할 것을 규정했는데 병마용의 병사들은 빨간색, 녹색의 도포와 파란색, 보라색, 흰색으로 복장색깔이 제멋대로 입니다.

 

*개상흑- 의복을 검은색으로 통일하고 제국의 색으로 정함

 

그리고 <사기>, <회남자>의 기록에는 진시황은 기병을 중시하는데 병마용의 병사들은 전차를 중심으로 사열하고 있어서 진시황의 군진과는 다른 양상이고 진시황시대에 전차전을 벌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병마용에서 출토된 도끼와 모자, 쪽진머리, 병마용에 새겨진 문자는 초나라의 풍속과 많은 유사점이 있고 사서에 기록된 진선태후가 묻힌 양리산(陽驪山)이 지금의 병마용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진선태후- 진소왕 시기에 41년동안이나 섭정을 한 여걸

 

그리고 대륙의 순장풍습은 하(夏), 은(殷)왕조의 장례방식이었는데 순장은 춘추시대의 회수이북에 있던 진(秦)나라에서는 성행하고 회수이남의 초나라에서는 순장 대신 도용을 부장품으로 매장했다. 당시 진나라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순장하는 풍습이 있었고 분서갱유시 수백명의 유생을 생매장한 진시황이 순장 대신 도용을 파묻을 필요는 없었습니다여기서 진선태후의 고향인 초나라를 살펴보면 동이계열 회이(淮夷)가 건설한 국가로 안휘성, 강소성, 절강성, 강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굴원의 <초사>에도 동이족인 전욱고양이 선조라는 기록이 있고 <후한서>'동이열전'에도 은왕조시대에 양자강지역까지 동이의 땅이라는 기록이 있다.

 

참고- 분서갱유

http://blog.naver.com/casahoo/20001284933

 

그리고 <환단고기>에는 회이족이 오(吳), 월(越), 초(楚)의 3국을 건국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생활풍속과 언어, 문화가 화하족과 다르며 고고학적 발굴에서 도기의 분포지점이 묘족(苗族)의 활동한 지역과 대체로 일치합니다.

 

<중국고대사회연구>

 

楚本蠻夷亦卽淮夷爲殷之同盟國

[초는 본래 만이 곧 회이로 은의 동맹국이었다]

회이족은 대륙의 강회(江淮)지역에 있었는데 치우의 강역이고 회이를 요, 순시대에는 남만(南蠻)이라고 했다.

 

<환단고기>

 

蚩尤天王見炎農之衰遂抱雄圖屢起天兵於西又自索度進兵據有淮垈之間

[치우천왕은 염제신농이 쇠퇴하자 서쪽에서 천병을 일으켜서 삭도로부터 진군하여 회대를 차지했다]

 

<일주서>

 

楚人先世居淮水下游與奄人徐人等同屬東國

[초의 조상은 회수에 거주했으며 엄인 서인등과 더불어 동국에 속했다]

 

<예기>

 

九黎爲苗民先祖

[동이 구려는 묘민의 선조이다]

 

묘족(苗族)과 초나라는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는데 춘추시대에 남만으로 송(宋)나라시대에는 요(瑤)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원(元)나라시대에는 묘(苗)라 했는데 묘와 요는 한 족속이므로 묘요(苗瑤)라고 한다. (韓)민족의 토템이 곰과 호랑이인데 초나라의 토템도 곰이고 초나라 왕족 성씨가 웅(熊)이였다. <환단고기>에 나오는 삼위(三危)와 태백(太白)이 사천성과 감숙성 지역을 가리키고 환웅이 천부인(天符印)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무속신앙을 의미하는데 초나라는 무속신앙이 성행했고 묘족은 아직도 무속신앙 전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韓)민족은 5월 5일을 단오라 하는데 우리말로는 태양을 상징하는 수릿날이라 했고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놀이와 행사가 펼쳐졌고 음식을 해 먹었는데 대륙의 묘족도 풍년수확을 경축하는 간추절(杆秋節)라는 단오풍습이 있습니다. 또 묘족은 지금도 단오절에 마늘과 쑥으로 잡귀를 쫓는데 한(韓)민족의 환국과 고조선의 기록에도 마늘과 쑥이 나옵니다. 그리고 병마용의 인물들은 상투를 하고 있는데 화하족과 유목민은 상투를 튼 풍속이 없으며 상투를 틀어 올린 민족은 동이족뿐 입니다.

 

병마용갱의 전체모습

대륙의 만리장성(萬里長城)

 

진시황의 장성(長城)에 대한 사서의 기록과 유적지의 위치를 보면 진나라는 음산지역까지 장성을 축성했고 더 이상 축성(築城)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도- 진장성 표시

 

1번- 진나라의 장성. 2번- 진나라 이후에 쌓은 장성. 3번- 고구려의 천리장성. 4번- 고려가 쌓은 장성.

 

<사기>

 

西至臨羌中南至北嚮戶北據河爲塞陰山至遼東

[서쪽의 임조에서 시작하여 강, 역을 지나서 북쪽으로 황하를 거쳐 음산근처에 이르고 음산을 지나면 요동이다]

 

*임조- 감숙성

 

<사기>’지리지’

 

西河有陰山縣

[서쪽 하수에 음산현이다]

 

서쪽에서부터 안문(雁門)까지 장성이 있고 안문 동쪽에는 장성이 없고 안문 동쪽에는 태행산맥(太行山脈)이 있어 안문은 요(遼)와 같은 남북축상에 있으니 안문 동쪽을 요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 요동의 위치

http://blog.naver.com/casahoo/20001306108

 

현재의 황하 서쪽은 감숙성에서 시작하여 령(靈), 하(夏), 승(勝)을 지나 북황하 황석보(滑石堡)에서 동쪽으로 와서 한줄기는 남쪽으로 안문까지 이르는 장성과 또 한줄기는 북쪽으로 마니산에 이르고 숭례(崇禮)를 거처 산해관에 이르는 장성이 있다.

 

지도- 중국군사지도 (노란선이 진나라의 장성, 녹색선은 후대에 축성)

 

현재 중국의 군사지도에도 진의 장성이 안문에서 나뉘어지는 것을 보더라도 진장성의 인식을 태행산맥 서쪽에서 끝난 것으로 표시하고 있다그러므로 진장성은 안문에서 끝나는 장성으로 볼 수 있고 진장성 기록과 일치하는 것으로 임조에서 안문까지 도달하는 유적이 현존하고 있는데 분명히 진장성은 기록과 일치하게 음산의 남쪽 안문에서 장성이 끝나며 동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이렇게 진시황의 진장성은 태행산맥에서 그쳤다는 것은 사서와 지도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고 이것은 장성의 북쪽과 장성의 동쪽이 서로 다른 민족이라는 반증이며 장성의 동쪽은 바로 BC.3세기에 있었던 고조선(古朝鮮)입니다.

 

[출처] 진시황유적의 허구|작성자 사후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