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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분류 창고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혜옹주


# 데이타팩토리는 자료를 정리하거나 가공하지 않습니다. 그냥 날것의 상태로 모아 둘 뿐입니다 #
# 언젠가는 누군가의 소소한 창작 소재가 되어 빛을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


# 개인적으로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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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선의 공주인데 왜 일본 공주에게 절을 해야 하는가?'

소 다케유키 家 모두는 일본황실이 보이는 쪽에서 엎드려 절을 했으나 한 여자, 덕혜옹주만은 꿋꿋히 조선의 자존심을 지켜내고 일본황실에 향해 절하지 않았다.

1912년, 갓난아기의 울음소리가 궁이 떠내려 갈 듯 울었다.
환갑이 넘은 고종이 그토록 사랑하던 귀인양씨가 예쁜 딸을 낳은 것이다.


*
덕혜옹주 돌, 때

고종이 환갑이 넘어서 본 딸이라, 특별히 예뻐하는 자식이었다고 한다.
한 일화로는, 늦은 밤에 고종은 딸이 너무 보고싶어서 젖을 먹이던 변상궁의 방에 들어가자 놀란 변상궁은 고종에게 예의를 갖추고 얼른 일어나려 했으나 고종은 옹주가  깰 것을 염려하여 '괜찮다, 어서 옹주에게 계속 젖을 먹이도록 해라 난 옹주가 그대로 자는 모습을 보고싶구나' 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그 옛날, 임금 앞에서 유모가 임금 앞에서
들어누워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옹주에 대한 사랑이 임금이 아닌, 아버지로서의 '고종' 을 만들게 한 것이다.

'나는 옹주가 그대로 자는 모습을 보고싶구나'



* 덕수궁 유치원 시절

고종에 대한 사랑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옹주가 6살 되던 해, 고종은 덕수궁에 유치원을 설치했고 옹주는 양반 자제들과 같이 공부를 하였고 마음껏 뛰어놓았다. 옹주는 남을 배려하던 마음이 깊었는데 한 급우가 놀다가 치마에 얼룩이 묻어 울상을 짓고 있었는데 옹주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입던 치마와 바꿔입었다고 한다. '걱정마, 내가 입던 치마와 네가 입던 치마를 바꿔입으면 아무도 얼룩이 묻은 것을 모를테고 너는 집에서 어머니께 혼나지 않아도 될꺼야'


* 소학교 시절의 덕혜옹주


* 일본에 가기전에


*
기차안에서 찍은 사진

옹주의 행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머니는 '유방암' 으로 죽었고 아버지는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일본사람들은 고종이 '뇌진탕' 으로 죽었다고 했으나 덕혜옹주는  뇌진탕이 아닌 일본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죽을 때 까지 믿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 
그녀는 하루하루가 외로웠다. 그러던 중 그녀는 일본관리들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있는 학교로 유학을 가게 된다.

'이제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쓸쓸해.. 무서워.. 어마마마. 아바마마. 보고싶어요' 


* 일본학교에서 수업받고있는 덕혜옹주

덕혜옹주의 학교생활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일본 아이들은 옹주를 '조센징의 공주' 라며 심한 이지메(왕따)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느 한 일본인 학생이 자리로 가는 옹주의 발을 걸게 해서 넘어뜨렸는데 '어머, 조선의 공주는 내게 절도 하네~'
라고 놀려대곤 했다. 

또한 주변의 친척들이 모두 독살로 죽자
옹주는 매일 학교내에 있는 식수를 사용하지 않고 집에서 물을 담아가지고 왔다고 한다. 물이 다 떨어졌으면 아무리 목이 말라도 식수를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이상하게 본 담임 선생은 '옹주님, 옹주님께서는 왜 식수를 사용하시지 않으십니까?' 라고 묻자 '식수에 독이 있을 까봐 마시지 않고 있습니다. 전 오빠들 처럼 독을 먹다 죽기는 싫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모두가 나를 괴롭히고 있어.. 학교가기 무서워..
오빠들도 죽고 이제 나를 지켜줄 사람이 없어서 무서워.. 하지만, 난 조선의 옹주야. 이런일로 기죽어 있으면 조선의 옹주가 아니야.'


*
신혼시절 덕혜옹주

옹주가 어느덧 시집갈 나이가 차자
일본 황실에서는 쓰시마섬 백작인 '소 다케유키' 와 강제결혼 시켰다. 백작은 일본인 답지 않게 키가 매우 컸으며 꽤 교양있고 다방면에 자질이 있었다고 한다. 둘의 관계는 의외로 잘 굴러갔고 둘 사이에는 예쁜 딸 '마사에' 도 낳았다.


* 덕혜옹주 결혼식 사진

하지만 둘의 관계는 덕혜옹주가 '치매' 를 앓기 시작 할 때 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옹주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를 잃은 슬픔과, 학우들에 의한 이지메 때문에 점점 정신질환적인 병을 얻고 가끔씩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부끄러워한 남편 소 다케유키는 처음엔 그녀를 치유하려고 애를 정성을 다했으나 그도 점점 지쳐가서 아예 옹주를 방에 가두어 두고 묶어두고 학대를 했고 옹주에 대한 사랑도 식어갔다. 딸 마사에는 이런 엄마를 매우 수치스러워 했고 학우들 역시 어릴 적 덕혜가 당했던 것 처럼 똑같이 그녀를 따돌렸다.

'당신이 내 엄마라는게 역겨워, 짜증나,
애들이 뭐래는 줄 알아? 나더러 더러운 조센징의 딸이래. 왜 날 낳은거야! 왜!!!'

그녀가 믿는 것은 아버지 '소 다케유키' 뿐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아버지를 통해 자기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고 입증할 수 있다고 느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마사에는 젊은 나이에 일본인 청년과 결혼했으나 2년뒤 유서를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를 속박하던 모든것들을 떨쳐 버리고
자유롭게 날아갈 꺼야. 이제 아무도 날 괴롭힐 순 없어.'

온 식구가 그녀를 찾으려고 애를 썼으나
 결국 그녀는 주검이 되어 가족들에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녀가 정말로 자살했는지 아니면 시댁에 의해 살해당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덕혜는 딸의 죽음을 듣고 안그래도 심한 병이 더 도졌다. '아.. 나의 이쁜 딸이 나보다 먼저 가버리다니.. 싫어.싫어.싫어.. 일본인이 죽였어.. 일본인이 죽였어.. 일본인이 죽였어..일본인이.. 아니겠지. 아니겠지. 아니겠지.. 날 놀리는거야.. 놀리는거야.. 놀리는거야.. 중얼중얼중얼중얼..'

덕혜옹주는 정신병이 발병해 도쿄의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입원되고,
남편과의 관계도 끝납니다. 1962년 1월 26일 덕혜옹주는 서울에 도착합니다. 그때까지 생존해있던 덕혜옹주의 유모 변복동은 덕혜옹주가 탄 비행기를 향해 큰절을 올렸고,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린 덕혜옹주를 본 모든 사람들은 울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풀각시처럼 아름답던 소녀의 모습을 기억하고 계신 상태에서 아래 사진을 보면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가 가시리라고 믿습니다.


* 서울에 도착한 덕혜옹주의 모습

부축을 받으며 창덕궁 낙선재로 들어가는 덕혜옹주.
이 때 순정효황후에게 문안 인사를 올린 덕혜옹주는 정신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놓아버린 상황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궁중 예법대로 절을 올려 주변을 놀라게 했다. 마치 정상인이 행동하는 듯이 하였으니깐..


*
덕혜옹주 회갑날

가장 왼쪽은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
그녀 옆에 앉은, 약간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저 할머니가 바로 '덕수궁의 꽃'이라고 불리던... 덕혜옹주


*
왼쪽에서 2번째가 덕혜옹주

귀국 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입원과 왕진 치료를 번갈아 하며 지내던 덕혜옹주.
그녀는 낙선재에서 여생을 보내며 상궁들의 도움을 받아 나들이를 하거나, 상궁들과 화투를 치기도 했습니다. 노년의 덕혜옹주는 생전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런 낙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구 씨가 보고 싶다"
  (얼마 전에 훙서한 회은황태손 이구, 이은 황태자의 아들.)
"나는 비전하가 보고 싶어요"  (여기서 비전하는 황태자비 이방자 여사를 가리킵니다)
"나는 낙선재 살고 싶어요"

덕혜옹주를 간병했던 이방자 여사는 병상의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빨리 깨어나세요. 이대로는 너무나도 일생이 슬퍼요..."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77세를 일기로 타계합니다.

덕수궁의 꽃으로 불리던 황녀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홍유릉 뒷편에 모셔집니다. 그녀를 정말로 사랑하고, 또 그녀 스스로도 정말 사랑했던 아버지 고종황제와 오빠 부부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의 곁으로...


*
대한 덕혜옹주지묘(大韓 德惠翁主之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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