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goyangin.net/news/articleView.html?idxno=5343
조선공산당 100주년? 여긴 대한민국입니다 - 고양 in
오는 17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이 열린다. 주최는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이사장 황석영)으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재조명한다는
www.goyangin.net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20077
"빨갱이 낙인 찍혔던 항일혁명가들, '역사적 복권'돼야"
"항일혁명가들이 추구한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은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며, '인간해방'이라는 하나의 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두 개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식민지
www.ohmynews.com
https://www.youtube.com/watch?v=RzTEtXp293U
사리사욕 챙기는 놈들 탄핵시켜버리니
이제는 반대에서도 문제네
민주주의 국가에도 공산당은 있지만
대한민국에서의 공산당 명칭은 거부감이 너무 강하네
https://osos.or.kr/notice/?bmode=view&idx=161289763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 초대합니다. : (사)권오설권오상기념사업회
“일본제국주의의 압박에서 조선을 절대로 해방함”(‘조선공산당선언’) 돌아오는 4월17일은, 항일혁명 최선두에서 싸운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입니다.🎉 다채로운 100주년 기념행사들이
osos.or.kr
내용은 알겠는데 존나 거북하게 다가온다
역사는 살리되 명칭은 바꿔야 하는게 답 아니냐?
사회주의라 하던지
아무리 내용이 독립이고 일제저항이라 해도
2025년 공산당 명칭을 받아드릴수는 없다!!
‘공산당’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북한? 김일성? 6·25 남침? 독재? 인권탄압? 한국전쟁의 상처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황에서 여전히 남북이 분단된 채로 북한의 핵무기 뉴스가 간간이 들려오는 21세기의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공산당에 대해 물어본다면 아마도 대부분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서 그 당시 한국인들에게 물어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은 ‘독립운동’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핏 보기에 공산주의와 독립운동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그 둘 사이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독립운동의 흐름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10년 우리는 나라를 잃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한국인의 주권을 강탈하고 한국을 강제로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일제가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자, 그 부당함을 전 세계에 폭로하고 조약이 무효임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도 파견해 보았고, 전 세계 열강에게 황제의 친서를 보내는 등 외교적 방법도 써 보았습니다. 일제에 못지않은 실력을 키우기 위해 근대적 지식인을 양성하는 구국계몽운동도 해보았고, 경제적 침략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채보상운동도 벌여 봤습니다. 무력으로 일제를 몰아내기 위해 의병을 조직하여 무장투쟁도 해 봤으며, 심지어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처단하기까지도 해 봤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우리는 일제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했고,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고 나서는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고 독립운동을 계속 해 나갔습니다. 비밀 결사 조직을 만들어 저항하기도 하고, 국외에 독립운동기지와 무관학교를 만들어 독립전쟁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당시 국제정세의 최고 이슈로 부각되던 민족자결주의에 근거하여 우리의 독립 의지를 알리기 위해 온 민족이 들고 일어나 독립을 선언하고 3·1 만세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해 국제 사회에 독립 청원도 해 보았고, 상하이(上海)에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연해주와 만주에서 독립군을 조직하여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20대 젊은이로부터 6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의열투쟁에 참여하여, 일본 천황 및 조선총독을 비롯한 침략의 수괴들과 일제 수탈 기관을 향해 폭탄을 던짐으로써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제국주의 침략의 부당함을 알리고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에도 우리는 일제를 몰아낼 수 없었고, 독립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일제가 너무 강해서였을까요? 물론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더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의 세계 체제가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비인간적이고 비인도적인 체제였기 때문입니다. 그 체제의 이름은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당시 자본주의는 계급적으로는 자본가와 대지주가 노동자와 소작농을 착취하고, 국가적으로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아 착취하는 것을 마치 자연의 법칙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국제적 약탈 자본주의 체제, 즉 '제국주의' 체제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리 헤이그에 특사를 보내고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보내도, 영국·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같은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모두 같은 자본주의 강대국인 일본과 한통속이었기 때문에 우리 말을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며, 3·1운동 참가자들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학살한 일제의 만행이 세계에 알려졌어도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우리의 고통에 눈을 감고 일본의 편에 섰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암울하던 시기에 하나의 희망이 생겨났습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제국 러시아가 무너지고, 왕과 귀족이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자신들의 기득권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영국, 미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자본주의 강대국들은 러시아 혁명을 무산시키고 혁명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반혁명파를 지원하는 간섭군을 파병하여 전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혁명 세력은 결국 내전에서 승리하였고 자본주의 간섭군마저 몰아낸 후 1922년 말에는 소련이라는 세계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를 세운 것입니다. 게다가 혁명 세력의 지도자 레닌은 공산주의 운동의 범위를 단지 러시아 내로 한정하지 않고, 코민테른이라고 하는 국제 공산주의 조직을 만들어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과 착취하에 신음하는 전 세계 식민지 약소국의 독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당시 세계 강대국 중에서 식민지 약소국을 지원한 나라는 오직 러시아뿐이었습니다.
러시아에서 불어온 이러한 반제국주의 혁명의 바람으로 인해 1920년대는 사회주의의 시대라고 할 만큼 전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운동의 붐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세계의 양심적 지식인들은 거의 모두 사회주의에 동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독립을 꿈꾸는 식민지 약소국 민중들 사이에서도 공산주의 운동이 불길처럼 퍼져나갔습니다. 이것은 3·1운동의 실패로 좌절하고 있던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한국의 독립운동가들도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공산주의 운동을 통한 독립을 꿈꾸고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첫 단추는 바로 조선공산당 창당이었습니다. 우후죽순으로 흩어져 있는 사회주의 세력을 하나로 통합하여 단일한 조직의 정당인 조선공산당을 만들고, 이를 코민테른과 연결시켜 독립운동을 지원받고, 그러한 지원을 발판으로 민중들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제국주의 일본을 타도하여 독립하는 것, 그리고 독립 이후 노동자와 농민 등 그동안 역사에서 천대받고 소외받아왔던 서민 대중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이 추구했던 공산주의 운동이었습니다.
한편 이러한 공산주의 열기를 가장 두려워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국주의 일본이었습니다. 일제는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법률 체계와 경찰, 검찰, 사법 조직을 이미 충분히 갖추고 있었음에도, 1925년에 치안유지법이라고 하는 새로운 악법을 만들었습니다. 치안유지법의 제1조 제1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체를 변혁하거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는 것을 목적으로 결사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즉, 치안유지법을 만든 목적은 천황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말살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제의 탄압책에도 굴하지 않고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비밀리에 공산당이라고 하는 지하조직을 만들어 항일독립운동의 기지를 건설하고자 목숨을 걸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실이 바로 1925년 4월에 만들어진 '조선공산당'이었습니다.
'뉴스 스크랩 >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찰청, 중국 공안부와 초국경범죄 협력 강화 (0) | 2025.04.22 |
---|---|
12.3 비상계엄 관련 반헌법행위자 처벌 등에 관한 특별법안 (0) | 2025.04.22 |
계몽인들이 물고 빠는 박정희 특허 경제원리 ㅋ (2) | 2025.04.18 |
한중, 한일의원 명단 (1) | 2025.04.17 |
윤석열과 전한길의 메타인지 (1) | 2025.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