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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분류 창고

비운의 테니스 여왕 - 모니카 셀레스


# 데이타팩토리는 자료를 정리하거나 가공하지 않습니다. 그냥 날것의 상태로 모아 둘 뿐입니다 #
# 언젠가는 누군가의 소소한 창작 소재가 되어 빛을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


# 개인적으로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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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다! 


아나 이바노비치, 엘레나 얀코비치, 노박 조코비치 이들의 공통점은 세르비아 출신의 세계 정상급 테니스 선수라는 겁니다. 그중에 역대 최고의 선수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비운의 테니스 여왕 모니카 셀레스입니다.

 

91년 US오픈에서 철녀 나브라틸로바를 꺽고 우승한 모니카 셀레스


90년 프랑스 오픈 결승전에 오른 선수는 88년 골든슬램을 달성하고 지난 3년간 8개의 메이저단식 타이틀을 석권한 당대 최강의 선수인 독일의 슈테피 그라프였고 다른 한 선수는 만 16세 6개월(73년 12월생)의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모니카 셀레스라는 소녀였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이 16세 6개월의 어린 소녀는 수많은 관중이 운집한 센터코트에서 그라프를 누르고 생애 첫 메이저 우승을 하였고 최연소 프랑스 오픈 챔피언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이듬해 91년 3월 영원히 1위를 할 것 같았던 여왕 슈테피 그라프를 끌어내리고 세계 랭킹 1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나이 만 17세 3개월. 그리고 그해 호주 오픈, 프랑스 오픈, US오픈을 우승했습니다.

 

92년 슈테피 그라프를 누르고 프랑스 오픈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셀레스


그녀의 테니스에 대한 열정과 노력은 대단했습니다. 이듬해인 92년 셀레스는 2년만에 다시 격돌한 독일의 슈테피 그라프를 누르고 프랑스 오픈 3연패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91년처럼 3개의 메이저 타이틀을 획득하며 세계 여자 테니스의 여왕자리를 그라프에게서 자신에게로 옮겨놨습니다. 93년의 출발도 역시 좋았습니다. 호주오픈에서 또다시 슈테피 그라프를 누르고 호주 오픈 3연패를 함과 동시에 자신의 메이저 타이틀 개수를 8개로 늘렸습니다.

 

테니스 역사상 최악의 사건이 벌어지다

 

피습직후의 셀레스와 그녀를 찌른 독일인 군터 파쉬


93년 4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시티즌컵 대회 도중 코트 체인지를 위해서 휴식시간을 갖던 중 군터 파쉬라는 독일인은 칼로 모니카 셀레스의 등을 찔렀습니다. 다행히 상처는 1.5cm정도로 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입은 정신적 충격은 그 깊이를 헤아릴수가 없었습니다. 경찰에서 그 독일인은 슈테피 그라프를 다시 세계랭킹 1위로 만들고 싶어서 그런 범행을 감행했다고 말해 전 유럽 아니 전 세계를 경악시켰습니다. 군터 파쉬의 발언으로 인해 전 세계의 비난이 독일로 쏟아졌습니다. 일부 황색언론에서는 나치의 망령이 되살아났다고 호돌갑을 떨면서 독일의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셀레스에게 위로와 격려가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여자 테니스의 방향은 그 독일인의 바램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슈테피 그라프에게 너무나도 버거웠던 모니카 셀레스가 잠시 테니스 무대에서 사라지자 88년과 같은 그녀의 폭주가 시작됬습니다. 그리하여 그라프는 93년 프랑스 오픈을 시작으로 윔블던 US오픈 그리고 94년 호주오픈까지 연달아 4개의 메이저 단식 타이틀을 휩쓸며 세계랭킹 1위에 복귀합니다. 그라프는 선수시절 22개의 메이저 단식 타이틀과 377주 세계랭킹 1위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셀레스의 피습이전에 꼭 절반인 11개의 메이저대회를 우승한 것과 당시 랭킹2위였다는 점을 볼때 그 불행했던 사건이 없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그라프의 팬을 제외한 세계테니스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아쉽고 불행한 사건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너무나도 아쉬운, 그러나 이제는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셀레스가 93년 호주오픈을 우승함으로써 자신의 8번째 메이저 타이트을 차지했을때 그녀의 나이는 만 19세 2개월이었습니다. 슈테피 그라프가 같은 나이에 단 4개의 메이저대회를 우승했고 또한 24번의 메이저단식우승으로 최다 우승기록을 가지고 있는 호주의 마가렛 코트가 20세이전에 불과 5번의 메이저 우승밖에 없었다는 점을 볼때 셀레스의 우승 페이스는 실로 대단했습니다. 전문가들은 93년에 셀레스가 88년의 그라프처럼 다시 한번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고 130년 테니스 역사상 최초로 만20세이전에 10개의 메이저대회 우승기록을 세울수 있을꺼라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93년 4월에 있었던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모든 장밋빛전망이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셀레스의 열렬한 팬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피습사건이후 전문가들은 5~6월이후 셀레스가 복귀할거라고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적 충격은 그녀가 코트에 서는걸 주저하게 했습니다 그녀의 복귀를 바라는 호소가 여기저기 쏟아졌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한때 그녀와 같이 훈련을 했던 철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가 자신과 같이 연습을 한 선수중에 셀레스처럼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선수는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코트에 복귀하지 못하는 그녀의 재능을 아까워했습니다.

 

복귀후 첫 메이저 우승이자 마지막 메이저 우승이 된 96년 호주오픈


그리고 마침내 피습을 당한지 27개월만에 셀레스는 코트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96년 호주오픈을 우승함으로써 자신의 메이저 우승기록을 9로 늘렸습니다 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셀레스는 더 이상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지 못하고 03년 프랑스 오픈을 끝으로 사실상 테니스무대를 떠났습니다 셀레스 몰락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코트를 너무 오랫동안 떠나있어서 최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명예의 전당 헌액식


이후 셀레스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됬습니다. 2009년 7월에 있었던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서 이제 자신은 과거의 불행했던 경험을 대중앞에서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그 사건이 자신을 한층 더 성숙시켰다고 말해 청중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어린 나이이에도 온갖 유혹들을 물리치고 항상 테니스에 대한 집념과 열정을 보이며 세계최고의 기량을 보여줬던 셀레스. 비록 뜻하지 않았던 사고로 인해 자신의 뜻을 맘것 펼치지 못했지만 더 이상 다시는 이와같은 불행없이 가족들과 행복한 삶을 이루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