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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분류 창고

세계사를 다시 써야 하는 고대 유적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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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커버리뉴스
 
터키, ‘타쉬 테펠러(Taş Tepeler) 프로젝트’로 신석기시대 역사를 재조명 한다.
기자명 정기환 기자   입력 2021.09.30 22:23  
 
타쉬 테펠러에는 인류 최초의 신전으로 여겨지는 괴베클리테페(Göbeklitepe)를 포함해 12개의 주요 유적지가 있으며 이중 카라한테페(Karahantepe), 할베트수반(Harbetsuvan), 귤츄테페(Gürcütepe), 쿠루테페시(Kurttepesi), 타쉬리테페(Taşlıtepe), 새페르테페(Sefertepe), 아야나르(Ayanlar), 요운불츠(Yoğunburç), 사이불츠(Sayburç), 착막테페(Çakmaktepe) 및 예니막할레(Yenimahalle) 등의 약 7곳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시기를 밝히기 위해 발굴을 진행 중이다.
 
발굴은 터키문화관광부 문화유산 및 박물관 총국의 지휘 하에 과학 위원회와 샨르우르파 박물관 이사회에서 수행하며, 다수의 해외 전문가를 초빙해 함께 수행할 예정이다.
 
본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될 유적들은 12,000년 전 쉼터가 주택으로 변모하는 시,발점으로 여겨지며 마을 및 계층 사회가 형성되고 기본적인 무역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발달되었음을 근거하는 유적들로 추정된다.
 
이 지역의 기념비적인 거석 구조물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 공간으로 여겨졌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샨르우르파 도심에서 차로 46km 가량 떨어진 카라한테페(Karahantepe)는 1997년 첫 발견 이후, 2019년 발굴이 시작되었다.
 
카라한테페에는 동물이 묘사된 250개 이상의 T자형 거석이 있으며 괴베클리테페와 구별되는 인간 묘사와 3차원 인간 조각품이 있는 석비도 현장에서 발견되었다.
 
카라한테페에서 최근 발굴된 비석과 조각 등은 본 프로젝트 론칭을 기념해 샨르우르파 고고학 박물관의 ‘카라한테페 및 신석기 시대 인류 전시(Karahantepe and Neolithic Human Exhibition)’에 행사 기간 동안 전시되었다. (디스커버리뉴스 인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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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베클리 테페" 두산백과 
 
튀르키예(터키)의 남동부 동남아나톨리아 지역의 게르무쉬(Germuş) 산맥에 있는 유적지로 샨리우르파 주의 주도인 샨리우르파(Şanlıurfa)시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12km 정도 떨어져 있다. 해발고도 760m의 언덕 위에 직사각형이나 긴 타원형의 구조로 거석 기둥들이 세워져 있다. 거석 유적들의 역사는 기원전 9,600년에서 8,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선토기신석기시대(Pre-Pottery Neolithic age)에 만들어져 종교, 사회적 의식이나 장례식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독특한 T 모양의 기둥에는 야생동물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 약 11,500여 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상과 신념, 세계관을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여겨진다.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구조물 중 하나로 꼽히며 그 고고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정 면적은 약 1.26㎢이며 완충 지역의 면적은 약 4.61㎢이다.
 
(중략)
 
괴베클리 테페는 인간 역사의 중요한 시기를 보여주는 기념비적 거석 구조물 앙상블의 훌륭한 예이다. 하나의 암석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T자형 돌기둥은 이제껏 알지 못했던 당시의 새로운 수준의 건축 및 엔지니어링 기술을 입증하는 자료가 된다. 이곳의 거석 구조물들을 통하여 선토기신석기시대에 전문적인 장인이 존재했던 것과 계층이 분화된 인간사회 형태가 구성되어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1987년과 2004년에 개정된 문화와 자연 유적지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다. 2005년에 제1도 고고학 보존지(1st Degree Archaeological Conservation Site)로 지정되었으며 완충 지역은 2016년에 제3도 고고학 보존지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두산백과 인용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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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조성된 시기
2010년 발표된 결과로는 가장 오래된 부분이 기원전 9675년 무렵이다. 한마디로 말해 이 구조물은 약 1만 1700년 전에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렇다면 토기 없는 신석기 시대(PPNA)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5] 이 정도 크기의 인공 구조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6] 대표적인 대규모 고(古)유적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이기도 한 기자의 대피라미드가 대략 기원전 2000-2700년 무렵 건설된 유적인데 괴베클리 테페는 이 시기를 아득히 뛰어 넘는다. 단순 계산으로 따져도 피라미드가 지어진 시기와 현대까지의 기간(4천 년)보다, 괴베클리 테페가 지어지고 피라미드가 지어지기까지의 기간(7천 년)이 3천 년이나 더 길다. 심지어 최초의 문명도시라고 하는 수메르 문명보다도 앞선 것이다.
 
슈미트 교수에 따르면 기둥에 새겨진 부조나 주변에 나타난 흔적 등을 토대로 보건대 수렵채집인들이 건축한 듯하지만[7], 일 년 중 일정기간은 마을에서 거주했을 듯하다.#
 
유적이 위치한 아나톨리아 지역은 현재까지 발견된 도시 중 가장 오래되고 초기 밀농사를 했다고 추정되는 유적들도 발견되므로, 수렵인들이 이런 종교시설을 건축하며 모여 살다가 농사를 지으며 정착민으로 변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새로운 학설이 제시되었다. 
 
(중략) 
 
이 시점이 중요하다는 것은 인류가 원시 생활에서 벗어나 일정 규모의 인구가 모여 연대를 붙이는 것이 의미 있는, 즉 문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고고학적 업적을 만든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괴베클리 테페를 의식한 것은 아니지만) 1993년 이탈리아계 미국인 지질학자 체사레 에밀리아니(Cesare Emiliani)는 서력기원의 연대에 1만을 더해 홀로세기원(Holocene era), 또는 인류기원(Human Era)이라고 이름지어 약칭 HE라고 쓰자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서기 2022년은 12022 HE라고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2019년, 괴베클리 테페에서 38 km 떨어진 카라한 테페(Karahantepe)에서 T자형 기둥이 250개나 발견되는 등 괴베클리 테페보다 더 거대한 신전이 있었고, 괴베클리 테페와 카라한 테페 이외에도 주변지역 각지에서 T자형 기둥 신전이 잇따라 발견되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한 집단으로 드러났다. 신전 주변에서도 곡식을 빻기 위해 필요한 맷돌과 탄화된 곡물 또한 대량으로 발굴되어 구석기 시대라 여기던 시절에 초기 농업 사회가 탄생했음이 밝혀졌다. (나무위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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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1만5천년전 소로리볍씨 인정돼야"   조지군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주임연구원
18일 충북대박물관 학술포럼서 밝혀
 
이지효 기자
승인 2018.01.21 16:18
 
조지군 박사가 청주 소로리볍씨 조사와 연구과정 현수막 앞에서 촬영하고 있다.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진 청주 소로리 볍씨에 대한 국제적 인정과 함께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볍씨 연구 분야의 권위자인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이 국제적 인정과 함께 다양한 연구 필요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중국 고대 볍씨 연구 권위자인 조지군(趙志軍·62)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주임연구원은 지난 18일 충북대박물관과 인문학연구소가 개최한 '충북대박물관 학술포럼'에서 "소로리 볍씨가 1만5천년 전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인정됐다면 국제적으로 인정을 해야 한다"며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길 바라고,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조 연구원의 발언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청주 소로리 볍씨를 인정하지 않았던 중국 학계의 변화를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2년 소로리 볍씨 제1회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했던 중국 학자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조지군 주임연구원은 이날 '도작농경의 기원연구'에 대한 발표를 통해 "1만년전 중국 양자강 중하류에서 벼의 기원이 있었다"는 발표와 함께 이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조 연구원은 미국에서 고대 볍씨 연구를 수행한 최초의 학자로 중국과학원과 함께 인문사회분야 최고 권위를 지닌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실 주임(실장)이어서 이날 발언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북경대를 졸업한 조 연구원은 미국 미조리 주립대에서 석·박사를 받은 후 중국에서 볍씨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청주 소로리볍씨 상징탑의 해설자료를 촬영하는 조지군 박사. / 이지효
 
조 연구원은 학술대회를 마친 지난 19일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 2리 마을 앞에 조성된 소로리볍씨 상징탑과 터를 방문해 답사하기도 했다. 조 연구원은 현장에서 "소로리의 유적 발굴이 언제 되는지 궁금하다"며 "꼭 다시 방문해 연구에 참여 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종윤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은 18일 "2009년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가 수행한 볍씨의 연대 측정 결과 1만 2천500여년전으로 나왔다"며 "이를 보정연대 계산법을 통해 산정하면 청주 소로리 볍씨는 1만5천년 전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이융조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중국사회과학원 현역연구원이 국내외 학자가 모인 자리에서 소로리 볍씨에 대한 인정 발언은 의미가 크다"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소로리 볍씨에 큰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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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소로리볍씨'에 대한 오해와 진실
[기고] 김영주 청주 소로리볍씨기념사업회 사무총장
 
중부매일
승인 2018.01.25 18:54
 
'청주 소로리볍씨'는 1997년 오창 과학산단 조성과 관련해 충북대학교 박물관팀(단장 이융조 교수)에 의해 1차 발굴조사를 시작했고, 2012년 3차발굴조사가 마무리 되면서 발굴된 129톨의 뼙씨가 원조다. 그 가운데 일부를 서울대를 비롯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및 지오크론 연구소 등 전문연구기관에서 연대측정한 결과 대략 1만5천년전으로 판명됐다. 이 분석을 토대로 고고학계와 전문가들로부터 인정받게 됐고 마침내 세계고고학개론서로 정평이 난 'Archeology' 2014년판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청주 소로리볍씨가 등재됐다. 그 후 소로리볍씨 상징탑은 우리나라를 찾는 해외 고고학연구학자들의 필수 방문코스다. 여기에는 한 고고학자의 피땀어린 노력과 집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명쌀축제를 즐기면서도 소로리볍씨에 대해서는 십수년이 지나도록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2014년 '소로리볍씨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됐고 불과 2년 전에 '청주 소로리볍씨기념사업회(회장 박연석)'로 개칭돼 상징탑을 건립함과 아울러 지난해에는 '청주 소로리볍씨 조사와 연구'책자를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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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5) 유전: 인류 문명의 최초 발상지는 전라남도 광양시임을 밝힙니다. 몇번의 인류가 그곳을 근거지로 삼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몇천번이 되었다 하여도 항상 그곳이 태초의 땅이 됩니다. 그 판단은 역사적 유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됩니다. 순차적으로 그 밖의 경계부터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순서대로 나와야 하며 그 순서는 더디게 느껴 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인류가 인정하게 될 때 확정 됩니다. 기다리는 것도 스스로 재미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