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스크랩/일본

가쓰라 · 태프트 밀약 (1905)


# 데이타팩토리는 자료를 정리하거나 가공하지 않습니다. 그냥 날것의 상태로 모아 둘 뿐입니다 #
# 언젠가는 누군가의 소소한 창작 소재가 되어 빛을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


# 개인적으로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좋아합니다 #


-




가쓰라 · 태프트 밀약 (1905)

 

1. 필리핀은 미국과 같은 친일적인 나라가 통치하는 것이 일본에 유리하며, 일본은 필리핀에 대해 어떤 침략적 의도도 갖지 않는다.

 

2. 극동의 전반적인 평화를 유지하는 데는 일본, 미국, 영국 등 3국 정부의 상호 양해를 달성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며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다.

 

3. 미국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 · 일 전쟁의 논리적 귀결이며 극동 평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인정한다.

 

이 조약은 가쓰라 · 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미국은 필리핀 지배권을 인정하는 암묵적인 밀약이었다.

 

1905년 러일전쟁이 끝나가던 시점에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1905년 7월 미국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일본에 파견하여 일본 수상 가쓰라 다로와 비밀회담을 가졌다. 1905년 7월 27일 비밀회담에서 '필리핀과 조선의 지배권'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최종 밀약은 7월 29일에 만들어졌다.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가쓰라 다로

가쓰라 · 태프트 밀약의 중점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쓰라 다로: 동아시아의 평화가 일본 외교의 근본적인 원칙이며, 이러한 동아시아의 평화는 일본, 미국, 영국 간의 협조가 있을 때에 가장 잘 이뤄질 수 있다.

 

월리엄 하워드 태프트: 필리핀은 일본과 같이 강력하고 우호적인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는 것이 일본에 최선일 것이다.

가쓰라 다로: 일본은 필리핀에 대한 어떠한 공격계획도 가지지 않고 있다.

 

가쓰라 다로: 러 · 일 전쟁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나라는 대한제국이었다. 일본이 대한제국에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대한제국은 또 다시 다른 세력과 조약이나 협정을 맺어 러일전쟁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상태로 돌아가는 경솔한 모습을 보일 것이므로, 대한제국 문제에 대한 종합적인 해결책을 도출하는 것이야말로 러 · 일 전쟁의 논리적인 귀결일 것이다. 이에 일본은 대한제국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이는 일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월리엄 하워드 태프트: 미국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보호권을 확립하는 것이 러 · 일 전쟁의 논리적 귀결이며 극동 평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인정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또한 이 문제에 대해 동의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 · 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미국은 필리핀 지배권을 서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 1905년 8월 12일에 맺어진 제2차 영 · 일 동맹과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이 채결되면서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세계 만국으로 부터 인정받게 되었다.

 

포츠머스 조약 (1905년)

 

제1조 '러시아는 일본이 조선에서 정치·군사·경제적인 우월권이 있음을 승인하고 또 조선에 대해 지도·보호·감독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승인한다.' (이하 6조 생략)

 

한편 조선정부는 가쓰라 · 태프트 밀약이 맺어진 줄도 모르고 러시아와 미국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 비밀조약은 1924년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의 T.데넷 교수가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서한집에서 발견함으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광복 이후 조·미 수호통상조약 (1882년)에 있는 '제3국이 한쪽 정부에 부당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다른 한쪽 정부는 원만한 타결을 위해 주선을 한다' 라는 조항을 위배했다며 미국의 행동에 규탄하기도 하였다.

 

자료참고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1) 사진출처:위키백과

가쓰라 다로 (1) 사진출처:위키백과

 

[출처] 가쓰라-태프트 밀약 (우리 역사 바로잡자) |작성자 우리 역사 바로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