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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스크랩/한국

식민사학에 물들지 않은 대한민국의 본래의 모습


# 데이타팩토리는 자료를 정리하거나 가공하지 않는다. 그냥 날것의 상태로 모아 둘 뿐 #
# 언젠가는 누군가의 소소한 창작 소재가 되어 빛을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 #


# 개인적으로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좋아한다 #


진실은 불편하다. 늘 스스로 찿아보고 더블체크 하는 습관을 갖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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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문명(홍산문화) 황하문명
요하문명, 장강문명, 황하문명
원형제단, 적석총, 웅녀상, 옥응룡, 용봉유물, 옥귀걸이, 상투옥고, 빗살무늬토기, 비파형 동검
적성총 분포도
동이, 북적, 중원, 만리장성

중국은 우리민족을 동이라 지칭

동방에 사는 민족, 큰 활을 사용하는 민족, 어진것을 의미, 인자는 장수하고, 군자들이 사는데, 죽지 않는 나라이다. 오랑캐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설문해자. 중국 후한 시대 A.D 100년경 허신에 의해 완성된 자서. 모두 15편 9,353자의 문자 해설

안호상박사가

"중국이 한자를 만들어 놓아 한자를 사용하는 우리나라까지 문제가 많다" 라고 말을 하자

 

"한자는 당시네 동이족 조상이 만든 문자인데 그것도 모르고 있소?"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장관 안호상 박사와의 만남에서

중국의 문학가 임어당

엄문명(중국 북경대)

중국은 동이문화다

 

약론 중국 문명의 기원

중국 문화는 동이

쉬량즈, 허광웨, 장푸샹, 왕셴탕, 리바이펑

동방 역사의 주인공, 동이를 연구한 중국 학자들

이자저야, 이는 저이다. 후한서 동이열전

장광직. 중국 고고학자, 인류학자

상문명을 창조한 주인공은 동방족이다

조선이 중국의 속국이었단 말은 터무니없어.. 요하, 송화강 유역 조선 민족이 오래 전부터 살아와.

북중관계 관련 주은래 총리의 말 <외사공직통보>에서 발췌

마오쩌둥 "요동은 원래 조선 땅"

중국 역사학자들은 어떤 때는 고대사를 왜곡했고 심지어 조선족은 '기자자손'이라는 말은 덧씌우기도 했는데 이것은 역사왜곡이다. 1963년 중국 외교부 <외사공작통보>

단군조선. 번한 진한 마한. 조현 기자묘. 서화 기자 독서대.

기자묘(산동성 조현읍)

기자가 한족이 아닌 동이족 출신임을 알고 있는 중국 정부는 그의 무덤을 방치하고 있다

평양에 있는 기자릉

서기전 12세기경의 인물인 기자는 사후 2600 여년 후

고려 유학자들에 의해 평양에 가짜 무덤이 만들어졌다

 단군조선의 국가 경영 제도. 삼한관경제

번한 안덕향 당산 - 진한 소밀랑 하얼빈 - 마한 백아강 평양

유엔 푸틴

고조선은 적어도 2천 년 동안 중국 지배를 받지 않고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고조선 저자 유엠 부찐(러시아어 출판, 한국어 출판)

동북아 고대사에서 단군조선을 제외하면 아시아 역사는 이해할 수 없다

제5의 문명 홍산문화

소하서, 흥륭와, 사해, 부하, 조보구, 홍산, 소하연, 하가점 문화

홍산문화. 후기 환국시대. 흥륭와 문화. 세계 최고의 옥결 발굴

흥륭와 문화의 집단 거주지

아궁이에 불을 때고 온돌을 사용했다

 흥륭와 유적. BC 6000년. 신석기시대 주거지 150기

 후기 환국시대. 사해 문화. 돌로 쌓은 용 형상의 석소룡(중화제일룡, 1994년 발굴)

사해유적. BC 6000년. 신석기시대 57기 주거지 발굴

환국, 신시, 청구, 배달

요하문명권의 시대별 유적

석유환국.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삼국유사 (동경대. 1904년)

중국사서지도접

석유환국. 1904년 일본 동경대에서 출판한 삼국유사

환국 - 통치자의 관직명은 환인

7대 환인 - 1세 인파견, 2세 혁서, 3세 고시리, ---, 7세 지위리 환인

12개 나라 -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 선비국

배달 - 통치자의 관직명은 환웅

18대 환웅 - 신시배달 : 1세 거발환, 2세 거불리, 3세 우야고, ---, 13세 사와라

청구배달 : 14세 자오지(치우), 15세 치액특, --- 18세 거불단 환웅

배달은 국호, 이 때부터 우리민족을 배달민족이라 부르기 시작함.

청구 치우천황(14세) 후기 청구시대

신시 환웅천황(1세) 전기 신시시대

신시배달. 1세 거발환 환웅, 2세 거불리 환웅, 3세 우야고 환웅, 4세 모사라 환웅, 5세 태우의 환웅, 6세 다의발 환웅, 7세 거련 환웅, 8세 안부련 환웅, 9세 양운 환웅, 10세 갈고 환웅, 11세 거야발 환웅, 12세 주무신 환웅, 13세 사와라 환웅

청구배달. 14세 자오지 환웅(치우천황), 15세 치액특 환웅, 16세 축다리 환웅, 17세 혁다세 환웅, 18세 거불단 환웅

배달국 14대 환웅 치우천황. 도깨비. 2002 붉은악마

신시배달국 환웅 계보 (18대 1,565년)

 

신시(神市)배달’과 ‘청구(靑丘)배달’을 기록한 문헌들

‘신시(神市)’배달을 기록한 문헌

◆<삼국유사> 일연 1206~ 1289 <권1 기이1 고조선(왕검조선)>古記云 昔有桓國(謂帝釋也) 庶子桓雄 ..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 <표제음주동국사략標題音註東國史略> 유희령 1480~ 1552 <권1 전조선>檀君 姓桓氏 名 王儉 .. 有神人桓因之子 桓雄 .. 謂之神市 在世理化

◆ <신증동국여지승람> 이행 홍언필 1530 <권54 평안도4 영변대도호부 고적 태백산)太佰山(古記 昔有天神桓因 名庶子雄 .. 謂之神市 主人間三百六十餘事)

◆ <기언記言> 허목 1595~1682 <권32 외편동사1 단군세가>上古九夷之初 有桓因氏 桓因生神市 始敎生民之治 民歸之神市 生檀君..

◆ <약천집藥泉集> 남구만 1629~1711 <제29잡저 동사변증 단군> 云昔有桓國帝釋庶子桓雄 受天符印三箇.. 謂之神市 是謂桓雄天王也

◆ 且其五行治水之法과 皇帝中經之書가 又出於太子扶婁오 而又傳之於虞司空하고 後에 復爲箕子之陳洪範於紂王者가 亦則皇帝中經과 五行治水之說이니 則蓋其學이 本神市邱井均田之遺法也니라.

오행치수법과 <황제중경皇帝中經>이 부루태자에게서 나와 우사공虞司空에게 전해졌는데, 후에 기자箕子가 은나라 주왕紂王에게 진술한 홍범구주 또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설이다. 본래 그 학문은 배달국 신시시대의 구정법邱井法과 균전법均田法에서 전해 내려온 법이다. ([태백일사]<태백일사>)

 

‘청구(靑丘)’배달을 기록한 문헌

◆ <규원사화> 북애자 1675 <태시기단군기>神市氏 寔爲東方人類之祖 .. 盖檀君以前 首出之聖人也 .. 曰靑丘國 宅樂浪忽'

◆ 倍達桓雄定有天下之號也其所都曰神市後徙靑邱國傳十八世歷一千五百六十五年

환웅께서 천하를 안정시키고 정하신 나라의 이름이다. 수도는 신시요, 후에 청구국으로 옮겼다. 18세를 전하니, 역년은 1,565년이다. <삼성기(三聖紀 下)>

◆ ‘神時之季에 有蚩尤天王이 恢拓靑邱하시고. 배달국 신시 시대 말기에 치우천황이 계시어 청구(靑邱)를 널리 개척하셨다.’ <「삼성기三聖紀 上」>

◆ 蚩尤起靑邱하시니 萬古振武聲이로다. 淮岱皆歸王하니 天下莫能侵이로다

치우천황 청구에서 일어나 만고에 무용을 떨치셔서 회수태산 모두 천황께 귀순하니 천하의 누구도 침범할수 없었사옵니다. <단군세기(檀君世紀)>

러시아의 달네고르스크의 동굴에서 약 7.700년 전의 유물과 유골이 다수 발견된 곳으로 러시아, 영국, 독일, 아일랜드 등의 연구진이 참여한 공동연구를 통해 이들 유골과 가장 가까운 인종이 한국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진한 단군왕검

부단군 번한 제1대 왕 차두남. 치우천왕의 후손

부단군 마한 제1대 왕 웅백다 웅씨족 직계 후손

고조선 변천 과정

제1왕조 - 송화강 아사달(하얼빈) 시대 - 삼한

제2왕조 - 백악산 아사달(장춘) 시대 - 삼조선

제3왕조 - 장당경 아사달(개원) 시대 - 대부여

 

고조선사를 한분의 단군사로 잘못 기록한 삼국유사에서 단군이 1908년을 살았다라고 한 것은 송화강 아사달과 백악산 아사달 시대를 합한 것이다. 응제시주, 역대세년가, 동사강목 등에서 단군왕검의 수를 1048년이라 한 것은 송화강 아사달 시대의 역년을 가르킨 것이다.

강화도 마리산 첨성단

초대 단군왕검 때 건설한 삼랑성(현 강화도 정족산성) 

이토 히로부미. 일본이 조선을 영구 지배하려면 조선역사 뿌리를 제거해야 된다

동북아역사재단. 하버드 사기 사건. 10억 국고로 일제 식민사관 영문책 발간하다 들통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공화국 프랑스는 관용으로 건설되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 나치부역자 숙청 반대 여론을 잠재우며

 

 

친일잔재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일본과 함께 갈 수 있다